“태풍 공포에도 버텼다” 하늘 위 굴뚝농성자들의 이틀

“태풍 공포에도 버텼다” 하늘 위 굴뚝농성자들의 이틀

이하영 기자
입력 2018-08-24 17:17
수정 2018-08-24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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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 하나로 태풍 ‘솔릭’을 버티려던 사람들이 있다. 바로 75m 상공에서 굴뚝 농성 중인 파인텍 노동자들이다. 굴뚝 위 농성자들을 위한 보급품은 가느다란 끈 하나로 올려진다. 이 끈이 생명줄인 셈이다.

시시각각 태풍피해 소식이 들려온 지난 며칠간 지상의 농성자들은 ‘굴뚝에 올라가 있는 동료가 혹시나 태풍에 휩쓸려가지는 않을까’ 며칠 걱정에 마음 편할 순간이 없었다. 평소에도 75m 하늘에선 지상보다 몇 배나 강한 바람이 불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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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전 10시 파인텍 굴뚝 농성장들이 도시락을 끌어 올리고 있다. 농성자들은 75m 상공에서 지상에 내려보낸 끈을 통해 하루 2번씩 도시락과 물, 기타 필요한 물건들을 공급받는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24일 오전 10시 파인텍 굴뚝 농성장들이 도시락을 끌어 올리고 있다. 농성자들은 75m 상공에서 지상에 내려보낸 끈을 통해 하루 2번씩 도시락과 물, 기타 필요한 물건들을 공급받는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24일 태풍이 한반도를 비켜갔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서울 양천구 서울에너지공사 앞 농성장 현장에서는 “정말 다행이다”는 안도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다음 스토리펀딩에 파인텍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는 김현수(37·여·대학원생)씨 역시 즐거운 얼굴로 굴뚝 위로 보낼 도시락을 챙겼다. 끈에 단단히 묶인 채 도시락은 75m 위 하늘로 올라가 무사히 굴뚝농성자들에게 전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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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전 10시 파인텍 노동자 김옥배(41)씨가 굴뚝 위로 보낼 도시락 가방을 묶고 매듭을 확인하고 있다. 굴뚝 위 농성자들에게는 하루 2번씩(오전 10시, 오후 5시) 식량이 공급된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24일 오전 10시 파인텍 노동자 김옥배(41)씨가 굴뚝 위로 보낼 도시락 가방을 묶고 매듭을 확인하고 있다. 굴뚝 위 농성자들에게는 하루 2번씩(오전 10시, 오후 5시) 식량이 공급된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파인텍 노동자 김옥배(41)씨는 “일기예보가 잘 안 맞는 걸 알면서도 자꾸 서울로 올라온다니까 걱정이 정말 많이 됐다”면서 “대비를 하긴 했지만, 굴뚝 농성자들 역시 태풍 소식에 자다깨다를 반복하면서 밤을 보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태풍이 빠르게 소멸하며 빠져나간 덕분에 굴뚝 농성장 근처는 밤새 약한 비만 내렸다.

수시로 뉴스를 확인하던 차광호(48) 지회장도 태풍 경로가 수정됐다는 소식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차 지회장은 “예상보다 100km는 더 내려갔다”면서 연신 “정말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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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후 태풍 ‘솔릭’의 경로를 확인하는 파인텍 차광호(48)지회장. 차 지회장은 예상보다 태풍경로가 아래쪽으로 내려간 것을 확인하고 크게 안도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23일 오후 태풍 ‘솔릭’의 경로를 확인하는 파인텍 차광호(48)지회장. 차 지회장은 예상보다 태풍경로가 아래쪽으로 내려간 것을 확인하고 크게 안도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전날인 23일 ‘솔릭’이 제주도를 강타하며 피해 소식이 쏟아지던 때만 해도 파인텍 노동자들의 얼굴에는 긴장이 잔뜩 서려 있었다. 먹구름이 가득한 농성장에 전운이 감돌 정도였다. 이날은 지상에 설치된 농성 현장에도 전에 없던 끈이 등장했다. 태풍을 대비해 농성장이 무너지지 않도록 단단히 묶기 위함이었다. 주변 전봇대와 서울에너지공사 담벼락 등 끈을 묶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하나씩 끈이 묶여 농성천막과 이어졌다.

이날 태풍을 맞이할 준비를 하던 차 지회장은 “태풍이 불면 음식을 조달할 수 없어서 미리 빵과 에너지바 같은 것들을 끈에 달아 올렸다”고 말했다. 굴뚝 농성자들에게는 오전 10시, 오후 5시 하루 2번씩 식사가 공급된다. 지상에 있는 동료들이 끈에 도시락이 담긴 가방을 묶어 75m 위 상공으로 올려 보낸다. 태풍이 불면 그마저도 조달할 수 없었다. 차 지회장은 “여기도 태풍 대비해 여기저기 끈으로 묶었지만, 굴뚝 위가 더 위험하기 때문에 안전을 대비해 끈을 잔뜩 올려보냈다”고 말했다.

차 지회장은 인터뷰 중간 중간 계속 굴뚝을 올려다봤다. 그는 경험자로서 저 위에서의 시간이 얼마나 힘겨운 생활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차 지회장은 “청와대와 박원순 시장 측에서 태풍을 피해 잠시만 내려올 수 없겠느냐기에 내려오라고만 하지 말고 올라간 이유를 생각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농성자들은 지난 3월 27일부터 하루 100만원씩 퇴거 강제금을 부과 받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이들의 요구는 어느 하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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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전 굴뚝농성 연대자 김현수(37·여·대학원생)씨가 농성 천막 앞에 놓인 농성일자 기록판을 ‘286일차‘로 고치고 있다. 김씨는 다음 스토리펀딩에 농성자들의 이야기를 연재 중이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24일 오전 굴뚝농성 연대자 김현수(37·여·대학원생)씨가 농성 천막 앞에 놓인 농성일자 기록판을 ‘286일차‘로 고치고 있다. 김씨는 다음 스토리펀딩에 농성자들의 이야기를 연재 중이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첫 굴뚝 농성은 2014년 5월 27일 새벽에 시작됐다. 회사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일방적으로 공장가동을 중단하고 노동자들을 해고시킨 게 원인이었다. 굴뚝은 파인텍 회장의 사무실이 보이는 가장 가까운 장소였다. 고작 80cm 정도 폭의 좁은 공간에서 차 지회장은 408일간 버텼다. 우여곡절 끝에 2015년 7월 8일 사측과 고용 및 노동조합, 단체협약 승계를 합의하고 농성을 종료했다. 하지만, 약속은 이번에도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2017년 11월 12일 새벽 2명의 농성자가 다시 굴뚝에 올랐다.

2차 농성이 시작된 지 어느덧 286일째. 지난겨울과 이번 여름 역대급 한파와 폭염을 겪으면서도 농성자들은 굳건히 버텼다. 이들의 요구는 단순했다. 약속한 회사에 “약속을 지키라”는 것. 태풍은 비켜갔지만 태풍을 대비해 단단히 묶어둔 끈처럼 노동자들은 굳건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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