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게 술 마시고 작별한 그날…박종철 선배가 죽었다”

“재밌게 술 마시고 작별한 그날…박종철 선배가 죽었다”

신성은 기자
입력 2018-01-11 10:27
수정 2018-01-12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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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열사 대학 동기·후배의 기억…“순수하고 선했던 사람”

“1987년 1월 13일 밤 종철이 형을 만나서 술 먹으면서 놀았어요. 그때 헤어지면서 종철이 형이 손을 흔들었는데 그게 마지막 인사일 줄은…”

1987년 1월 14일 경찰의 고문을 받아 숨진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 박종철 열사의 대학 1년 후배인 이현주(52·여)씨는 31년이 지난 지금도 박 열사의 마지막 모습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이씨는 11일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박 열사와 함께했던 마지막 순간을 불과 어제 일처럼 생생히 전했다. 그는 인터뷰 도중 감정이 북받쳐 올라 수시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기억하는 박 열사의 마지막은 ‘유쾌한 선배’의 모습이었다.

이씨는 “1987년 1월 13일 자정에 학과 학생회장이었던 종철이 형이 성적표를 전해준다고 신림동 집 앞에 왔다”며 “늦은 시간이니 집에 가라고 했는데 옆에 있던 내 동생한테 야식이라도 사줘야 한다면서 같이 나오라고 하니 안 나갈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근처 분식집에서 박 열사와 함께 2∼3시간가량 만두를 먹으며 술을 마셨다고 회상했다.

그는 “얼마나 재밌었는지 아직도 그때가 기억이 난다”며 “종철이 형이 동생한테 공부 열심히 하라고 충고하면서 웃고 떠들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이어 “즐겁게 야식을 먹고 집으로 들어가는데 종철이 형이 한참을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며 “그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씨는 다음날 TV 뉴스를 보고 박 열사가 경찰 고문으로 숨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며 박 열사의 죽음을 단순 쇼크사로 위장하려 했다.

그는 “내가 아는 종철이 형은 경찰의 고문에 놀라서 죽을 정도로 심약한 사람이 아니었다”며 “원리원칙을 지키면서도 신념을 지킬 때는 언제나 꼿꼿한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씨는 박 열사를 ‘평소 엄격했지만 때로는 누구보다 재미있었던 사람’으로 기억했다.

이씨는 “종철이 형은 심각하고 무거운 이미지의 운동권 학생들과 달리 사람의 경계심을 풀어버릴 정도로 순수하고 선했다”며 “그런 모습에 종철이 형을 따라 입학하자마자 써클에도 가입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종철이 형이 같이 사진 찍었다가 경찰에게 걸리면 안 된다고 사진도 못 찍게 했다”면서 “같이 찍은 사진이 없어 아쉽고, 보고 싶다”고 했다.

박 열사의 마지막을 기억하는 대학 동기 이윤정(53·여)씨 역시 박 열사를 ‘노래 부르며 기타 치던 유쾌한 친구’로 기억했다.

윤정씨는 박 열사가 숨지기 전날인 1987년 1월 13일 서울대 언어학과 사무실에서 박 열사를 마지막으로 만났다고 한다.

그는 “고향에서 올라와 과사무실에 갔는데 종철이가 왔다”며 “‘어디 가느냐’고 하니까 ‘일본어 공부하러 간다’고 웃으면서 말했었다”고 전했다.

그는 “일본어 수업 늦었다고 서둘러 나가던 그 모습이 종철이의 마지막이었다”며 “다음날 동기로부터 전화를 받고 뉴스를 본 뒤에야 종철이가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윤정씨는 “종철이는 운동권, 비운동권 할 것 없이 모든 친구와 잘 지냈다”며 “1학년 때 대성리로 MT를 갔을 때 기타 치면서 노래도 불러주던 멋진 친구였다”고 회고했다.

윤정씨는 31년이 지나 영화 ‘1987’을 보고 박 열사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고문이라는 공포 속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행동했던 종철이를 생각하면 죄책감이 있다”며 “‘1987’을 보고 눈물이 계속 흘렀던 것도 종철이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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