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헌책방’ 공씨책방 이삿짐 싼다…“더 작아지지 않았으면”

‘1세대 헌책방’ 공씨책방 이삿짐 싼다…“더 작아지지 않았으면”

김태이 기자
입력 2017-12-24 10:45
수정 2017-12-24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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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주와 법정 다툼 끝에 내년 1월 인근 건물 지하로 이전

한국 ‘1세대 헌책방’으로 꼽히는 서울 신촌의 공씨책방이 가게를 비워달라는 건물주와 갈등 끝에 결국 이전하기로 했다.

공씨책방 대표 최성장(71)씨는 21일 연합뉴스와 만나 “내년 2월 5일까지 가게를 비워주기로 (건물주와) 약속했다”며 “현재 우리가 창고로 쓰는 인근 건물 지하로 1월 말쯤 옮길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공씨책방 설립자 고(故) 공진석 씨의 처제다. 현재는 공씨의 조카 장화민 씨와 함께 책방을 꾸려나가고 있다.

공씨가 1972년 동대문구 회기동에서 시작한 공씨책방은 1980년대 광화문 근처에 자리 잡으며 한때 전국 최대 규모 헌책방으로 명성을 날렸다.

1995년 신촌 현대백화점 근처의 지금 자리로 와서 22년째 명맥을 이어왔다.

하지만 건물주가 지난해 임대차 계약 갱신을 거절하고 건물명도 소송을 냈다. 1심 재판은 올해 9월 건물주 승소로 결론이 났다. 공씨책방 측은 항소했으나 법적 다툼을 접고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2심은 진행되지 않았다.

최씨는 “갈 곳이 마땅치 않으니 창고로 가기는 하는데 (책이) 다 안 들어갈 것 같아 걱정”이라며 “여기서 20년 넘게 있었는데 옮기려니 착잡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버려야 할 게 너무 많다”면서도 “요즘 사람들이 종이 책을 많이 안 보니 (헌 책이) 쌓이기만 하는데 우리도 막상 버리지 못하는 악순환”이라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점점 짐이 늘어나는 데다가 (책을 쌓아두는) 장소가 다 돈으로 연결되니까 헌책방들이 어렵다”며 “가정집도 이사할 때 책이 많으면 짐 챙기기가 어렵지 않으냐.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고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공씨책방은 여러 시민이 공유할 수 있는 공통의 기억과 감성을 지녔다는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최씨는 법률상 권리를 행사하려는 건물주에 맞서 법정 다툼을 벌일 때 이런 점이 고려되지 않을까 기대도 걸었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당시 판사는 “사회 이목이 쏠린 사건이었는데 현행법에서는 이런 결론밖에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최씨는 “많은 분이 기대를 해주셨는데…”라고 말끝을 흐린 뒤 “서울시에서도 (새로운 장소로) 여러 곳을 권했는데 헌책방인 우리가 쓰기에 적절한 곳을 찾지는 못했다”며 아쉬움과 함께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이제 우리 같은 책방은 건물주들이 그리 반기는 손님이 아닌 것 같다”며 “지하는 몰라도 1, 2층은 건물 임대에 영향을 준다고 꺼린다. 건물주가 ‘비워달라’고 하면 금방 털고 나갈 수가 없어서 그런가”라고 되물었다.

취재진이 찾아갔을 때 책방에는 책더미를 뒤지는 손님 서너 명이 눈에 띄었다.

빛바랜 한의학 서적 두 권을 1만원에 고른 서선용(40)씨는 “한의학 쪽에 종사한다. 중국에 가면 살 수 있는 책들인데 갈 시간이 없으니까 이곳에 왔다”면서 최씨에게 “저 아니면 가져갈 사람이 없을 텐데 싸게 달라”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최씨는 “옛날부터 오시는 분들이 제법 있는데 저도 나이를 먹다 보니 기억력이 흐려진다”며 “참 그리운 손님들이 많다”고 떠올렸다.

공씨책방의 새 터전은 지금 자리에서 지하철 신촌역 쪽으로 50m가량 떨어진 미용실이 있는 건물의 지하다.

최씨는 “내 이름이 성장인데 ‘성장(成長)’하지 못했다”면서 “여기서 더 작아지지만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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