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위성·보안성 소속 다수…고문·강제낙태 등 반인도적 범죄까지 법무부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출범 1년…연내 관련 자료 DB화
정부가 북한 주민의 인권을 침해한 북한 관리들의 혐의 수백 건을 파악해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그간 민간의 비슷한 시도는 있었지만, 정부가 직접 북한 관리들의 가해 내용과 일부 신원을 확보한 사실이 파악된 것은 처음이다.
30일 자유한국당 윤상직 의원과 법무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10일 문을 연 법무부 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9월 말까지 약 1년간 ‘북한 인권 가해자 카드’ 245건을 생산했다.
이는 북한 이탈 주민이 겪거나 보고 들은 인권침해 사건을 당국이 수집·분석해 가해자별 신상정보와 혐의사실을 기록한 문건이다.
검사 3명 등 12명 규모의 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통일부로부터 매 분기 넘겨받은 245건의 탈북민 조사 문답서 중 205건을 분석해 이 같은 명단을 확보했다. 이달 20일 추가로 문답서 110건을 전달받는 등 가해자 숫자는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파악된 가해자 245명은 사실상 비밀경찰 조직인 국가보위성(옛 국가안전보위부), 일반 경찰인 인민보안성(옛 사회안전부) 등 대부분 권력기구 소속 지도원·보안원이다.
이들의 혐의에는 주민 폭행, 고문 등 가혹 행위뿐 아니라 성범죄, 강제낙태 등 반인도적 내용까지 포함됐다.
2010년부터 탈북민과 가족 등 700여 명을 중국에서 구출한 미국 대북인권단체 링크(Link)의 박석길 한국지부장은 “탈북민 가운데 폭행, 고문뿐 아니라 경제·사회적 자유를 박탈당하는 등 인권침해를 겪지 않는 북한 주민은 없다고 할 정도”라고 말했다.
법무부는 가해자들의 소속 기관, 근무지, 직위 외에 일부 이름과 몽타주까지 확보한 상태다. 국제적 우려가 커지는 북한 인권과 관련한 한국 정부의 ‘블랙리스트’인 셈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가해자의 성명까지 특정된 경우는 파악된 사건의 5% 가량”이라며 “신원 특정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관련 자료를 연말까지 데이터베이스화할 계획이며 이는 통일 후 형사책임을 묻는 기초 증거가 될 전망이다. 권력기관의 조직적 가담 정황이 드러날 경우 정권 고위층까지 책임 소재가 올라갈 수도 있다.
권오곤 전 유고국제형사재판소(ICTY) 부소장은 “일선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의 책임을 최고위층까지 연계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작업”이라며 “태영호 전 북한 공사와 같은 고위급 내부자의 증언을 차곡차곡 모아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준 전 유엔 대사는 “북한의 인권침해 관련 정보가 축적되면 언젠가는 국제적 사법 절차에 회부될 수도 있다”며 “기록이 유지된다는 것 자체로도 북한 관리들의 인권탄압, 불법행위를 사전 예방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남북관계법·북한법 전문가인 검사 출신 한명섭 변호사는 “정기적으로 북한 인권침해 가해자 명단과 침해 사실을 공개하고 이들을 국제 재판소 등에 형사입건해 기소 중지시켜놓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보존소가 참고한 모델은 1961년 서독이 국경 지역 잘츠기터에 세운 ‘중앙법무기록보존소’다. 동독에서 자행된 비인도적 정권범죄 자료를 1990년 통일 때까지 4만여 건 수집해 형사소추와 동독 공직자 재임용, 피해자 보상 등의 근거로 활용했다.
윤 의원은 “정부는 북한 주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다각적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가해자를 엄단할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