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차원 일방 추진에 ‘불통’ 논란…독재미화·부실집필 비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동력 상실…문 대통령, 폐기 지시 ‘마침표’
교육부가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여론조작 의혹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의뢰하기로 하면서 2년 전 시작된 국정화 추진 과정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역사교과서 국정화는 교육부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팀 조사를 통해 단순한 ‘불통’을 넘어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교육부 등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개입해 수준 이하의 여론조작을 시도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2015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부터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내비쳤던 황우여 당시 교육부 장관은 10월 12일 ‘올바른 역사관과 대한민국 정통성 확립’을 명분으로 국정화 방침을 발표했다.
박정희 유신체제였던 1974년 역사교과서가 국정 단일본으로 바뀔 때 당시 문교부가 “학생들에게 올바른 사관을 심어주기 위해 국정교과서로 정하게 됐다”고 밝힌 것과 판박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교육부가 국정 전환을 발표한 뒤 열린 국무회의에서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며 국정화에 결정적인 힘을 실어줬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지시가 담긴 것으로 알려진 고(故)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에서도 ‘역사교과서-국정전환-신념’이라는 메모가 발견돼 국정화가 정권 차원에서 이뤄진 것임을 암시하기도 했다.
국정교과서는 집필 과정에서도 ‘불통’ 논란에 휩싸였다.
교육부는 2015년 11월3일 중·고교 역사교과서 국정 발행을 확정고시하고 집필 작업에 들어갔지만, 집필진 명단과 편찬기준은 2016년 11월28일 교과서 현장검토본이 나오기 전까지 일절 공개되지 않았다.
교육부는 국정교과서에 ‘올바른 역사교과서’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현장검토본이 공개되자 박정희 독재정권 미화와 크고 작은 내용 오류로 부실 집필 논란까지 일었다.
지난해 하반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면서 국정교과서는 추진 동력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교육부는 12월27일 ‘2017년 3월부터 모든 중·고교에서 국정교과서를 전면 적용한다’는 기존 방침을 철회하고 연구학교에서만 쓰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연구학교가 전국에서 단 한 곳에 그치고 이마저도 법원에서 효력정지 결정이 나오면서 국정교과서 사용은 아예 불발됐다.
그러자 교육부는 내년 3월부터는 국정과 검정 가운데 하나를 학교가 골라 쓰는 역사교과서 국·검정 혼용제도 도입을 추진했지만, 조기 정권 교체로 무산됐다.
지난 5월 10일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5월 12일 두 번째 업무지시에서 국정교과서 폐기를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상식과 정의를 바로 세우고 역사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를 지시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국정 역사교과서가 구시대적인 획일적 역사교육과 국민을 분열시키는 편 가르기 교육의 상징으로, 이를 폐기하는 것은 역사교육이 정치적 논리에 이용되지 않아야 한다는 의지의 천명이라는 게 정부 설명이었다.
교육부는 대통령의 폐기 지시가 나온 지 4시간여 만에 ‘국정교과서 폐지 결정’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고 지시 이행에 즉각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7월에는 폐기된 국정교과서를 대체할 새 검정교과서를 2020학년도부터 사용하기로 했다.
애초 2018학년도부터 새 교과서가 사용될 예정이었지만 국정교과서 영향을 받은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다시 손질하기 위해 2년 연기한 것이다.
9월에는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직속으로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고석규)를 꾸리고 박근혜 정부의 국정화 추진 과정 조사에 나섰다.
진상조사위는 조사 결과의 신뢰성 제고를 위해 역사학자와 교사, 시민단체 관계자, 법조인, 회계사, 정부·공공기관 인사 등 13명의 외부인과 교육부 기조실장·학교정책실장 등 15명으로 이뤄졌다.
조사위는 9월25일과 10월10일 두 차례 회의를 열어 교육부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팀의 사전조사를 토대로 국정화 의견수렴 과정의 찬성여론 조작 의혹을 확인하고 수사 의뢰를 교육부에 요청했다.
조사위는 “의견수렴 마지막 날 한꺼번에 제출된 4만여장의 찬성의견서를 보면 동일 주소가 1천500장 이상, 동일인이 수백장 이상 반복되는가 하면 욕설과 비속어가 난무하고 이완용, 박정희 등 오래전 사망한 인물까지 등장한다”며 “검찰 수사를 통해 청와대, 국정원, 교육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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