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前대통령의 짧은 소회 해석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습니다”21일 뇌물수수 등 13개 혐의에 대한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두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검찰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설치된 포토라인에 서고 있다.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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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짧은 입장 발표는 향후 여론 형성과 검찰 수사를 의식한 숙고의 결과로 분석된다. 일반적으로 ‘거물급’ 피의자들은 검찰 청사 앞 포토라인에서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코멘트를 내놓는다. ‘죄가 없다’고 읍소하면 부정적인 여론이 커질 수 있고, 죄를 인정하는 것처럼 말하면 향후 재판 등에서 불리해질 수 있는 피의자 처지에서는 일종의 모범답안인 셈이다.
박 전 대통령이 사용한 ‘송구’라는 표현에 대해 두 가지 엇갈린 해석이 따른다. 그가 직접적인 사과에 인색했던 전례를 감안하면 ‘송구’에는 사과의 의미도 담겼다는 해석이 우선 나온다. 여권의 한 인사는 ‘송구’라는 표현은 박 전 대통령이 사과라는 표현을 피해 자주 쓰던 말이라고 전했다. 과거 박 전 대통령은 새누리당 대선 경선이 한창이던 2012년 8월 공천헌금 파문과 관련해 “국민들께 안타깝고 송구스러운 마음”이라고 사과의 뜻을 우회적으로 밝혔다.
서울지역 한 부장검사는 “잘못이 있어 신문을 받으러 오는 피의자가 혐의를 뉘우치기는커녕 ‘억울하다’고 하면 여론만 안 좋아진다”면서 “변호사들이 의뢰인들에게 ‘검사 앞에서 충분히 해명하면 되니 포토라인에서는 참아 달라’고 조언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송구’는 탄핵정국에 따른 혼란상에 대한 유감 표명일뿐 사과와 거리가 먼, ‘진실을 밝히겠다’는 기조를 거듭 천명한 것이라는 해석도 따른다. 지난해 11월 4일 박 전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미르·케이(K)스포츠재단 설립 과정을 설명하며 “선의의 도움을 주셨던 기업인 여러분께도 큰 실망을 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한 경우 등이 이날 ‘송구’의 뜻과 궤를 같이한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이든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가 5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혐의와 관련해 어느 쪽으로든 구체적으로 언급할 경우 자칫 정치권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지역 한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이 한 말은 사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과 같다. 자신이 한 말에 대한 해석들을 경계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2017-03-22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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