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태풍 강도·이동 경로 이례적…경보시스템 개선해야”
제18호 태풍 차바가 10월 태풍으로는 이례적으로 강한 세력을 유지한 채 한반도 남부를 강타해 큰 피해를 일으킨 요인은 무엇일까.기후전문가와 방재전문가들은 6일 차바에 예측이 어려운 이례적인 변수들이 동시에 작용해 정확한 예보가 어려웠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경보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피해 상당 부분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기후전문가들은 북태평양과 제주도 인근 고온현상, 편서풍 파동, 북태평양 고기압 등이 동시에 작용해 차바가 이례적으로 강해지고 한반도를 직접 강타하는 예상치 못한 이동 경로를 보인 것으로 분석했다.
차바가 한반도에 도달할 때까지 강력한 세력을 유지한 요인으로는 북태평양과 제주도 인근의 고온현상이 꼽힌다.
해수에서 열을 흡수해 에너지를 얻는 태풍은 북상하면서 해수 온도가 점점 낮아지면 차츰 약화하는데 차바는 예년보다 온도가 1∼2도 높은 북태평양과 제주 인근을 지나면서 계속 에너지와 수증기를 공급받아 약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차바가 한반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이동 경로를 따라 움직인 데는 주변 기압 배치와 편서풍 파동이 작용한 때문으로 분석된다. 10월에 발생한 태풍이 한반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은 10년에 한 번 정도 있는 이례적인 일이다.
강남영 국가태풍센터 예보팀장은 “가을에 발생하는 태풍은 일반적으로 북상하면서 편서풍파동의 찬공기 영향을 받아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일본 남쪽으로 가는 게 일반적”이라며 “하지만 차바는 편서풍파동이 예년과 다르게 작용해 예상보다 더 북쪽으로 올라왔다”고 말했다.
북태평양 고기압도 차바가 한반도로 온 요인으로 꼽힌다. 기상청은 이 무렵 태풍은 일반적으로 일본 남쪽 해상을 향하지만, 올해는 10월 초까지도 일본 남동쪽 해상에 중심을 둔 북태평양 고기압이 강한 세력을 유지해 차바가 한반도 부근으로 북상했다고 밝혔다.
기후전문가와 방재전문가들은 그러나 이런 예측 불가능성을 인정하더라도 이에 대한 대비와 경보 등 방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며 이에 대한 점검과 개선을 촉구했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은 “하상 주차장 차량이 물에 잠긴 피해는 경보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발생한 것”이라며 “국민안전처나 기상청, 자연재해 방재를 담당하는 지자체 등이 태풍의 위력과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태풍은 예측과 경보시스템 가동이 중요한 데 현재 예보는 위험을 예측해 미리 알려준다기보다는 실황을 중계하는 듯한 느낌”이라며 “기상정보를 기상청이 독점하지 말고 민간에도 공유해 다양한 예보가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충화 대전대 안전방재학부 교수는 “과거 데이터에 의존하는 소극적 방재가 아니라 기후변화 등으로 예측하지 못한 큰 재해가 올 수 있다는 인식을 하고 방재 대책의 목표를 더 높이는 등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방재정책을 세우고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우리 사회에는 방재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거나 경보를 발령한 뒤 재해가 발생하지 않으면 비난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며 “방재 예산이나 경보시스템 가동은 재해 피해를 막기 위해 감수해야 할 비용이라는 의식이 정착돼야 방재업무 담당자들이 책임감을 갖고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