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현호 선상살인 재구성…회식→건배오해→난투→연쇄살해

광현호 선상살인 재구성…회식→건배오해→난투→연쇄살해

입력 2016-07-04 14:04
수정 2016-07-04 16:36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비인격적인 대우·하선으로 인한 경제적 문제 등 복합적으로 작용한 듯

지난달 19일 오후 인도양에서 어장이동 중이던 참치잡이 원양어선인 ‘광현 803호(138t)’에서 선상 회식이 열렸다.

이미지 확대
살해 혐의 부인하는 광현호 베트남 선원
살해 혐의 부인하는 광현호 베트남 선원 원양어선 광현 803호에서 한국인 선장과 기관장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베트남 선원 2명 중 V(32)씨가 1일 오전 부산지법의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부산 해양경비안전서를 나오고 있다. V씨는 ”선장을 죽였느냐”는 질문에 ”NO”라고 답했다. 2016.7.1
연합뉴스


선장은 수고가 많다며 양주와 수박을 가지고 와 시작된 회식은 밤까지 이어졌다. 선장, 기관장을 포함한 10여명의 베트남·인도네시아 선원들이 갑판에서 총 5병의 양주를 마셨다.

화기애애했던 회식은 베트남 선원 V(32)씨가 선장 양모(43)씨에게 삿대질을 하며 비아냥거리는 표정으로 “요요요∼, 선장 베리굿”이라고 말하며 분위기가 급변했다.

선장은 베트남어로 건배를 뜻하는 ‘요’를 욕설로 오해해 화를 냈다. 둘은 몸싸움을 벌였고 V씨가 선장의 뺨을 때렸다.

선장이 감정을 억누르며 일단락된 다툼은 V씨가 다시 ‘요요요∼’라며 시비를 걸면서 폭발했다.

선장이 V씨에게 “집으로 돌려보내겠다”며 말하자 둘은 다시 멱살을 잡으며 몸싸움을 벌였다.

이를 말리던 다른 선원을 V씨가 걷어차면서 회식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화가 난 선장은 조타실로 올라가 선내 방송으로 V씨 등 베트남 선원 7명 전원을 집합시켰다.

조타실로 가기 전 V씨는 B(32)씨와 함께 동료 베트남 선원 5명에게 선장을 죽이자고 공모했다. 식당에서 흉기 2개를 들고 온 B씨는 그중 하나를 동료 선원에게 주며 조타실에서 선장을 찌르라고 했다.

B씨는 다른 선원의 목에 흉기를 들이대며 선장을 죽이는데 동참하라고 협박하기까지 했다. 선장을 죽이지 못하면 이번에는 강제로 하선(下船) 조치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흉기를 건네받은 선원은 겁이 나서 갑판으로 던졌고 결국 B씨만 흉기를 들고 나머지 6명의 베트남 선원과 조타실로 올라갔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B씨는 흉기로 선장을 위협하며 베트남어로 “선장을 죽이자”고 말했다.

술에 취한 B씨가 순간 흉기를 놓쳐 조타실 바닥에 떨어진 것을 동료가 얼른 주워 밖으로 집어 던진 후 선장과 B, V씨의 난투극이 벌어졌다. 다른 선원은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그 사이 B씨가 식당으로 가서 들고온 다른 흉기로 선장 등을 향해 휘둘렀다.

조타실에 있던 B, V씨를 제외한 나머지 베트남 선원들은 혼비백산해 달아나 창고 속에 숨어 문을 잠갔다.

일부 선원은 당직 근무 후 쉬던 항해사 이씨에게 “선장님이 산타마리아가 됐다”며 살인사건을 알렸다.

성모마리아를 뜻하는 산타마리아는 뱃사람 용어로 사람이 죽거나 물건이 파손됐을 경우 사용하는 말이다.

B씨와 V씨는 이미 한차례 흉기에 찔린 선장을 잔인하게 살해했다. V씨가 선장 뒤에서 목을 감싼 뒤 B씨는 선장에게 무려 15차례나 흉기를 휘둘렀다.

이 과정에서 V씨는 B씨가 휘두른 흉기에 오른손을 찔렸다.

이들의 광기 어린 살인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B씨가 조타실 중앙통로로 연결되는 선실로 가서 잠을 자던 기관장에게 흉기를 8차례나 휘둘렀다.

B씨가 휘두른 흉기에 전신에 중상을 입은 선장과 기관장은 과다출혈과 장기손상으로 숨졌다.

이들은 칼부림 소식을 듣고 달려온 항해사 이씨도 죽이려 했다. 이씨가 선장을 살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B씨와 V씨는 태권도 4단, 합기도 2단 등 상당한 무도 실력을 갖춘 이씨에게 흉기를 빼앗긴 채 차례로 제압당했다.

B씨 등은 그제야 자신이 저지른 범행의 심각성을 깨닫고 눈물을 흘렸다.

항해사 이씨는 범행과정에서 오른손을 다친 V씨를 치료해주는 등 살인 피의자 2명을 다독여가며 4일간 선장과 기관장 없이 다른 선원을 통솔해 배를 안전하게 세이셸로 몰고 왔다.

애초 살인사건을 선사로 알린 신고자로 알려진 항해사 이씨는 광기의 선상살인을 진압하고 다른 선원의 안전을 책임진 사실상의 검거자였다고 부산해양경비안전서(해경)는 설명했다. 해경은 이씨의 포상을 추진하고 있다.

해경은 선상 회식에서 발생한 말다툼과 시비가 선상살인의 도화선이 된 것으로 보고 대질심문 방식도 동원해 피의자에게 직접적인 범행동기를 추궁하고 있다.

친척 사이인 32살 동갑내기 B, V씨는 단짝 친구로 지난해 2월부터 광현호에서 선원생활을 했다.

애초 B씨가 단독 범행이라고 살인혐의를 홀로 덮어쓰려했지만 범행과정에서 다친 V씨의 오른손 상처가 결정적인 증거가 돼 자백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숨진 기관장과는 1년 이상, 조업부진으로 올해 4월 바뀐 선장과는 2개월가량 배를 탔다.

평소 작업이 서툴러 선장과 기관장에게 욕설과 구박 등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최근에는 연료와 식량 등을 보충하려 세이셸에 배가 정박한 사이 휴대전화를 고친다며 무단으로 이탈했다가 선장과 기관장으로부터 “고향으로 돌려보내버리겠다”며 강한 질책을 받기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광현호에 승선하며 현지 선원송출회사에 300만원의 담보금을 맡겼는데 강제 하선을 당하면 이 돈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 돈으로 300만원은 한 가족의 1년 생활비 정도로 큰 돈이라고 해경은 설명했다. 이들은 외국인 선원 가운데서도 최저 수준인 약 60만원의 월급을 받았다.

해경은 회식에서 다시 한번 집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는 선장의 말을 들은 B, V씨의 압박감이 상당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