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도 고소장 쓸 줄 알아…‘업신여기지 마라’ 메시지 주고 싶었다”
장애인에 염색비 52만원 받은 미용실, 유통기한 지난 약품 사용
MBC 캡처.
이씨는 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남의 인생이 망가진 걸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뇌병변 장애를 앓는 이 씨는 지난 5월 26일 집 근처인 A미용실에 염색을 하러 갔다가 주인 안모(49·여) 씨가 일방적으로 52만원을 결제하자 장애인단체와 경찰에 도움을 청했다.
안 씨는 “비싼 약품을 써서 특수 기술로 시술한다”고 속여 손님 8명에게서 240만 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지난달 29일 구속됐다.
이 씨는 “안 씨는 터무니없는 요금을 받은 것도 모자라 장애인 비하 발언을 서슴지 않고 대놓고 무시했다”면서 “전혀 뉘우치는 기색도 없어 꼭 처벌받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그는 “막상 (안 씨가) 구속까지 되는 걸 보니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린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별로 기분이 안 좋다”고 심정을 털어놓았다.
이어 “자신이 한 일을 빨리 인정하고, 잘못을 뉘우치고 빨리 벌을 받고 나오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씨는 최근 이 사건을 주제로 한 TV 토론 프로그램 출연자들이 쏟아낸 말에 또다시 큰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이 씨는 “돈은 원래 만만한 사람을 이용해서 버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중에서도 특히 만만한 이들은 장애인이라고…. 너무 속상했어요”라고 말했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이런 편견과 잘못된 인식에 맞서 싸우기 위해 미용실 주인을 고소했다고 이 씨는 강조했다.
“우리 장애인도 경찰에 신고할 줄 알고, 고소장도 쓸 줄 안다는 걸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어요. 비장애인들이 아는 건 다 안다, 만만하게 보지 마라, 이런 메시지를 날리고 싶었습니다.”
그는 “TV 토론회의 한 출연자는 ‘자동차 기름이 떨어졌는데 주유소가 하나밖에 없으면 가격이 비싸든 싸든 무조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장애인을) 받아주는 곳이면 들어가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 씨는 보건복지부가 미용실 바가지요금 근절 대책을 내놓은 것과 관련해 “기뻤다. 법과 제도가 강화되면 비장애인도 모두 혜택을 보는 거 아니냐”고 했다.
복지부는 이 사건으로 사회적 논란이 벌어지자 지난달 30일 ‘미용업소 가격 게시 및 사전정보 제공 지침’을 만들어 전국 시·도와 시·군·구에 보냈다.
이달 15일부터 시행되는 이 지침은 미용업소가 서비스 제공 전에 최종 지불요금 내역서를 만들어 손님에게 보이고 비용 지불에 합의하도록 의무화했다.
이 씨는 앞으로 좀 더 착하고 값이 싼 미용실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미용실이 많지 않아요. 문턱이나 계단이 있거나 아니면 좁거나 대부분 그렇거든요. 문제가 된 그 미용실도 동네에서 제일 넓어서 갔던 거예요.”
이 씨를 돕고 있는 충주 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쉽지 않은 상황에서 당당히 권리 주장을 한 이 씨의 용기를 높이 평가한다”며 “다르지만 함께 사는 세상,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세상을 위해 함께 해달라”고 당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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