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범 사각’ 등산로…잊을 만하면 터지는 살인사건

‘방범 사각’ 등산로…잊을 만하면 터지는 살인사건

입력 2016-05-30 14:32
수정 2016-05-30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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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 초입·길목엔 CCTV 달고 등산객은 호루라기 소지”

전국 유명 등산로에서 여성이나 노약자를 노리는 강력사건이 잊을 만하면 터져 국민 불안이 커지고 있다.

등산로는 평소 인적이 드물고 조명과 방범시설이 부족한 탓에 강력 범죄에 취약하다.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이 주된 범죄 표적인 만큼 특단의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등산로 초입과 길목에 CC(폐쇄회로)TV를 설치하고 등산객은 호신장비를 준비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 등산로 살인은 대부분 여성이 피해자

29일 오전 5시 32분께 서울 노원구 상계동 수락산 등산로 초입에서 60대 여성이 시신으로 발견됐다. 주부 A(64·여)씨가 혼자 산에 올랐다가 목과 배를 수차례 흉기로 찔려 숨졌다.

사건 발생 13시간 만에 강도살인으로 15년간 복역하고 최근 출소한 김모(61)씨가 자수했다.

등산로 강력사건은 대부분 여성이 피해자다.

작년 10월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무학산 8부 능선 등산로 인근에서도 B(51·여)씨가 살해됐다. 경찰 수사로 검거된 피의자 정모(47)씨는 정상에서 우연히 B씨를 보고 성폭행 충동을 느껴 범행을 저질렀다.

정상에서 약 1.8㎞를 뒤따라간 정 씨는 인적이 드문 무학산 6부 능선에서 갑자기 B씨를 밀치고 성폭행을 시도했다.

이에 B씨가 소리를 지르며 반항하자 주먹과 발로 얼굴과 배 등을 때리고서 목 졸라 살해했다.

2012년 7월에는 제주 올레길에서 40대 여성이 숨졌다.

강모(46)씨가 두산봉 밑 올레 1코스에서 이 여성을 보고 나무 뒤편으로 끌고 가 성폭행을 시도하다가 반항하자 목 졸라 살해했다.

◇ 여성 단독 등산객 표적으로 성폭행·강도 행각도

지난 2014년에는 무려 4년간 홀로 산에 오르는 여성 등산객을 표적으로 음란 행위나 강도를 일삼고 성폭행까지 저지른 이른바 ‘다람쥐 바바리맨’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C(50)씨는 그해 5월 16일 오후 4시께 경기도 의왕시 바라산에서 한 여성 등산객을 상대로 음란 행위를 하다가 현장에서 체포됐다.

경찰은 C씨의 인상착의가 수도권 일대에서 수년간 벌어진 강도·추행·성폭행 용의자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실제로 DNA 감식을 벌이자 C씨의 다른 범행이 드러났다.

그는 2009년 8월∼2013년 11월 의왕 청계산과 수원 광교산 등 수도권 일대 산에서 여성을 성폭행한 ‘다람쥐 바바리맨’과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C씨는 홀로 등산하는 여성 6명을 노려 성폭행하고, 휴대전화와 현금, 액세서리 등 5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빼앗기도 했다.

아울러 산속에서 속옷만 입은 채 숨어있다가 홀로 걸어가는 여성 등산객을 발견하면 뛰쳐나와 음란 행위를 하기도 했다.

구속된 C씨는 경찰에서 “호기심에 그랬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 남성도 피해…노약자가 범죄 표적

올해 4월에는 광주 광산구 서봉동 어등산 팔각정 인근에서 예비군복 차림의 김모(49)씨가 흉기를 휘둘러 60대 등산객을 살해했다.

김씨는 휴대전화를 보던 이씨에게 다가가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냐고 묻고서 흉기로 목과 가슴, 등, 허벅지 등을 수차례 찔렀다.

지난해 2월에는 경기도 수원시 광교산 등산로에서 신모(47)씨가 살인 범죄를 저질렀다. 우연히 마주한 등산객들에게 몽둥이를 마구 휘둘러 한 등산객이 목숨을 잃었다. 조현병을 앓던 신씨는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8월 도봉산에서도 ‘묻지마 범죄’가 있었다.

김모(46)씨는 도봉산 입구에서 어깨가 부딪힌 등산객 한모(65)씨에 날카로운 등산용 도구를 휘둘러 중태에 빠트렸다.

한씨는 당시 배와 왼쪽 뺨, 입술 등을 크게 다쳐 전치 6개월 이상의 중상을 입었다.

◇ CCTV 증설하고 개인 호신 필요

시민 휴식처인 등산로가 강력 범죄에 취약한 것은 인적이 드물고 CCTV 등 방범 장비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경찰청은 등산로 범죄가 터질 때마다 개선책을 내놓지만, 미봉책에 그쳤다.

경찰 업무가 평소에도 가중한 탓에 순찰 인력을 늘리기도 쉽지 않다.

따라서 등산로 강력사건을 줄이려면 방범 장비를 늘리고 개인 차원의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이 제언했다.

한 일선 경찰서 형사과장도 비슷한 처방을 제시했다.

그는 30일 “등산은 기본적으로 안전사고 위험이 크므로 동료와 함께해야 한다”며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주변에 알릴 수 있도록 호루라기 같은 호신 장비를 갖춰야 한다”고 당부했다.

등산로 초입이나 길이 갈라지는 길목에는 CCTV를 설치해야 한다는 조언도 했다. 이 지점 CCTV는 등산객과 하산객을 모두 포착할 수 있기에 범죄 분위기를 억제하고 사건이 터지면 범인을 신속하게 특정할 수 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등산로 보안시스템 강화와 별도로 교정제도의 개선을 요구했다.

이 교수는 “CCTV나 순찰 같은 ‘일반 제지’가 아닌 보호관찰 등 ‘특수 제지’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수락산 피살사건 범인도 최근 출소한 만큼 보호관찰제도를 서둘러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출소 한 달 안에 강력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은 교도소에서도 폭력성을 보일 개연성이 높으므로 출소 단계에서 보호관찰을 검토할 수 있다”며 “소년범처럼 성인도 가석방 심사 때 보호관찰을 추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 희생자가 많은 것은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가부장제 사고와 관련이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장·노년층 남성이 경제불안 속에서 가부장적 사고를 버리지 못한 탓에 누적된 불만을 여성에게 범죄 형태로 쏟아내는 사례가 빈번하다”고 말했다.

여성도 나이를 먹을수록 비정규직 취업이나 경력 단절이 많은데, 지위 하락에 남성이 유독 강한 상실감을 느끼는 것은 ‘일은 남자 몫’이라는 가부장제 전통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이 교수는 “등산로 여성 범죄를 단순히 성 대결 구도 탓으로 보지 말고 모든 사회적 약자를 위한 국가 안전망을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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