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수십마리씩 잔인하게, 위생시설 없이…개 도축장 성업

하루 수십마리씩 잔인하게, 위생시설 없이…개 도축장 성업

입력 2016-05-22 10:48
수정 2016-05-22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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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용가축’ 명시 안돼 단속 근거 없어…“명확한 규제 기준 마련돼야”

진동하는 악취에 전기 충격기와 녹슨 각종 기구에 엉겨 붙은 개털들.

의정부시 외곽에 있는 한 개 도축장의 모습이다. 위생 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개 도축 시설이 버젓이 운영 중이지만 이를 규제할 마땅한 제도가 없어 지자체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22일 의정부시에 따르면 지난달 말 시청 직원과 경찰관들이 시 외곽에 있는 한 개 도축장을 단속하기 위해 급습했다. 패널과 비닐 천막 등으로 조잡하게 만들어진 도축장이었다.

안에서는 개의 숨을 끊을 때 쓰는 전기 충격기와 털을 태우거나 정리하는 기기들, 도축한 개 고기를 씻는 수도 시설 등이 발견됐다. 하나같이 위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도축장 옆 사육장에서는 도축을 기다리는 십여 마리의 개들이 발견됐다.

당연히 축산물위생법상 불법 도축 혐의로 기소될 법한 사안이었지만 이 시설은 폐수 시설을 갖추지 않고 오ㆍ폐수를 하천으로 흘려보낸 혐의만 인정돼 기소의견으로 송치됐다.

어째서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개는 현행법상 식용으로 소비되는 가축이 아니기 때문이다.

축산물위생관리법상 가축의 도살은 허가받은 도축장에서 할 수 있지만 개는 가축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즉, 주인이 임의로 시설을 만들고 여기서 개를 식용으로 도살해도 법적으로 처벌할 근거는 없다.

개를 잔혹하게 도축하면 동물학대 혐의가 적용될 수 있지만 현장을 포착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이번에 적발된 시설은 평소에는 하루 10∼20마리, 복날 등 개고기 수요가 많은 시점에는 하루 평균 50마리 이상을 도축하는 전문 도축장 역할을 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이에 대한 당국의 대응은 사실상 속수무책에 가까우며 당국 역시 이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시 관계자는 “시골에서 마을 사람들끼리 개 한 마리 잡아 나눠 먹는 것이야 문제가 될 소지가 적지만, 이처럼 일정 규모 이상의 도축과 고기 유통이 이뤄지는 시설이 법의 테두리 밖에 있다는 점은 분명한 문제”라고 말했다.

도축 과정에서 나온 피와 오물 등이 흘러나와 하천을 오염시키고 개가 도축될 때 나는 소음과 악취, 혐오감 등 때문에 민원도 끊이지 않는다.

시와 경찰은 이러한 민원으로 지난해에도 비슷한 규모의 개 도축장 2곳을 단속했지만 당시에도 폐수처리 시설 미비 혐의만 적용했을 뿐이다.

시 관계자는 “해당 시설에 민원이 끊이지 않아 자진 폐업을 권고했지만 ‘왜 먹고 살 수단을 빼앗으려 하느냐’는 반발만 듣고 있다”며 “규제할 근거가 마땅찮아 골머리만 썩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사정은 경기도 외곽의 다른 지자체들에서도 비슷하지만 경찰에서도 “개는 단속해봤자 입건도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 단속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물 자유연대 조희경 대표는 “불법 개 도축장에서는 개를 잔혹하게 도살하거나 다른 개가 보는 앞에서 개를 잡는 등 동물 학대가 발생할 가능성이 다분하다”며 “개를 식용으로 도살하는 것에 대한 명확한 규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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