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대란에 운영난 직면한 유치원들 “임금 체불 위기”

보육대란에 운영난 직면한 유치원들 “임금 체불 위기”

입력 2016-01-19 16:01
수정 2016-01-19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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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교사 급여 어쩌나”…학부모 부담 고지서 ‘만지작’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 미편성에 따른 이른바 ‘보육대란’으로 사립 유치원들이 급기야 운영난에 직면했다.

누리과정 예산 사태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월말 인건비와 운영비 지출 시점이 눈앞에 닥쳤기 때문이다.

사태를 지켜보며 기다리던 학부모들도 유치원에 입학비 반환이나 등원 중지 등을 문의하는 등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경기 수원 A사립유치원 원장 이모(49·여)씨는 월말 지출금을 두고 교사와 학부모들 눈치를 살피는 중이다.

매월 25일 인건비 2천만원을 교사 등 10여명에게 지급해야 하지만 매월 10∼20일께 지원되던 누리과정비 29만원(유아학비 22만원+방과후과정비 7만원)이 입금되지 않아서다.

지난주 방학을 끝내고 나서 원생 10여명이 등원하지 않아 들기 시작한 불안감이 이제 현실의 압박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씨는 “사비를 털어서라도 인건비를 마련하고 싶지만 현실적인 제약이 많다”며 “교사들은 평소처럼 본인들의 업무에 집중하고 있지만 혹시나 급여 지급이 늦어질까 봐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하다”고 말했다.

이어 “어제는 ‘입학비를 돌려받을 수 있느냐’는 학부모 문의를 네 번이나 받았다”며 “주변 유치원에서도 방학이 끝난 뒤 나중에 아이를 보내겠다며 등원하지 않는 원생이 부쩍 늘었다”고 덧붙였다.

다른 사립유치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B사립유치원 원장은 “누리과정비에 대한 해답이 나오지 않고 있어 지금까지 미뤘던 유치원비 고지서를 학부모에게 발송할 계획”이라며 “매달 10여만원이었던 유치원비가 30여만원으로 크게 늘기 때문에 당장 반발이 있겠으나 지금으로선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경기도 유치원 누리과정 지원금은 매달 4일 이후 각 교육지원청에서 유치원에 지급됐다. 각 유치원은 늦어도 20일 전후까지 이를 받았다.

각 유치원은 누리과정 지원금과 학부모가 추가로 내는 유치원비 등을 합쳐 매달 20∼30일(대체로 25일) 인건비를 지급해왔다.

국가가 대신 부담하는 누리과정비와 별도로 학부모가 추가 부담하는 유치원비(수업료, 급식비, 간식비, 교재비, 특기 적성비 등)는 매달 20일 이후 학부모에게 고지서가 나간다. 선납이 원칙이나 일부는 후불로 내는 학부모도 있다.

사태가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자 사립유치원들은 유치원비 고지서를 학부모들에게 발부할지를 고심하고 있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 경기지회 한 관계자는 “사정상 유치원이 부담하기도 어렵고, 학부모들에게 돈을 내라고 하기도 그렇다. 가장 시급한 게 교사 인건비다. 진퇴양난의 기로에 서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상황이 꼬이면서 가뜩이나 힘든 사립유치원 교사들이 임금 체불이라는 1차 피해 위기에 놓인 셈이다. 이런 사정은 소규모 영세 유치원일수록 심각하다.

사립과 달리, 국·공립유치원들은 인건비와 운영비가 안정적으로 지급되고 있어 누리과정 지원금이 끊기더라도 운영에 큰 차질이 없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 경기지회는 지난 18일부터 2월 13일까지 도청과 도교육청 앞에 누리과정 예산 미편성에 항의하는 집회 신고를 낸 상태다.

20일까지 기다려보고 해답이 나오지 않으면 집단행동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경기지회 송기문 회장대행은 “사립유치원 운영비에서 인건비가 70%를 차지한다”며 “인건비가 지급되는 20∼30일이 고비”라며 조속한 해결을 촉구했다.

어린이집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유치원과 달리, 학부모가 매월 15일께 아이행복카드로 보육비를 결제하면 그다음 달 20일 이후 해당 카드사에 보육비가 지급되는 방식이어서 실제 1월분 보육료가 정산되기까지 한 달 이상 여유가 있다.

이날 경기도가 준예산으로 두 달치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집행하겠다고 한 것에 대해서는 “한 시름 놓았다”는 반응과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엇갈렸다.

한 어린이집 원장은 “한동안 가슴앓이를 했는데 그나마 준예산으로 누리과정비가 지원되는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어린이집이나 학부모 모두 사정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누리과정 예산이 지속적으로 지원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정아 경기도어린이집연합회 부회장은 “경기도에 산적한 더 큰 문제도 많은데 정부 예산이 아닌 경기도 예산으로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이 집행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12개월도 아닌 2개월치는 ‘급한 불만 끄겠다’는 의미로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사태 해결의 돌파구가 보이지 않으면서 학부모의 걱정도 날로 커지고 있다.

성남시 분당에 사는 초등생과 유치원생 자녀 2명을 둔 30대 학부모는 “정부와 교육청이 서로 미루기식이고 선생님은 고용이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들이 피해를 볼까 걱정이다. 당장 원비를 인상하지 않더라도 보조교사라도 줄일 텐데 그렇게 하면 교육과 보육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중학생과 유치원생 자녀 둘을 둔 40대 주부는 “원비가 인상된다면 20만원이 넘게 오를텐데 경제사정이 안 좋은 가정에서는 부담스러울 뿐 아니라 집에서 보육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 것 같다”며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난다”고 했다.

6살 쌍둥이를 수원의 사립유치원에 보내는 한 학부모는 “누리과정 지원이 중단되면 매달 유치원비로 들어가는 돈이 70만∼80만원이나 된다. 아이들을 시골 할머니 댁에 보내야 하는지, 어린이집으로 보내야하는지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학부모 커뮤니티에는 “누리과정이 중단되면 한 달에 50만원 이상의 교육비 지출이 생기는데 그러면 차라리 무리해서라도 영어유치원에 보내겠다”는 자조섞인 대안까지 올라와 있다.

누리과정 사태와 관련, 도교육청은 유아교육과, 복지법무과, 정책기획관실, 대변인실 등으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법률·재정적 해소 대책과 대외 정보 제공에 착수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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