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군인 방사청 파견·軍 특유 조직문화도 비리 원인 꼽혀
이규태(65) 일광공영 회장은 국군 기무사령부 소속 군무원들에게서 800건 넘는 군사기밀을 넘겨받아 군 내부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했다. 공군 전자전 훈련장비(EWTS) 등 이 회장이 중개한 사업 정보가 대거 포함됐다.각종 편법을 써가며 EWTS 사업비를 멋대로 부풀리는데도 군 안팎의 감시체계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예비역 장군이 임원으로 취업한 협력업체도 사기행각에 참여했다. 사업 제안부터 납품까지 전 과정이 이 회장의 각본대로 진행된 EWTS 도입사업은 방위사업 비리가 싹트는 구조적 환경을 전형적으로 보여줬다.
◇ 방위사업청에 권한 집중됐지만 감시는 제대로 안 돼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은 15일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미흡한 감시·감독 시스템을 비리의 원인으로 우선 꼽았다.
방위사업 자체가 워낙 전문적이고 폐쇄적인 분야인 만큼 효과적인 감시가 어려운데다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비리 덩어리도 커졌다는 분석이다. 우리나라 무기구매 예산은 2005년 7조원에서 올해 11조원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방위산업 관련 무역대리점은 480곳에서 944곳으로 배 가까이 증가했다.
2003년 대공포 도입비리를 계기로 설립된 방위사업청은 사업 전반에 대한 권한이 집중되면서 되레 비리의 온상으로 낙인찍혔다. 방사청은 외청이라는 이유로 국방부의 상시 감사도 받지 않는데다 기무사와 국방기술품질원도 감시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사실이 지금까지 수사결과로 드러났다.
이런 ‘감시 사각지대’가 만들어진 데는 군과 민간 검찰의 수사 관할권 문제도 작용했다. 군과 방산업체, 현역 군인과 민간 중개업자의 유착으로 비리가 시작되지만 수사 영역이 제한된 탓에 비리에 둔감한 풍토가 조성됐다고 합수단은 분석했다.
합수단 관계자는 “방위사업은 담당자가 아니면 현역 군인도 내용이나 절차를 이해하기 어렵다. 법령 위반을 통제하는 준법감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군 안팎에서는 현역 군인의 방사청 파견근무가 또다른 비리의 원인이라는 지적도 한다. 파견 군인들이 자신의 인사권을 갖고 있는 소속 군의 부당한 의견에 휘둘릴 가능성이 커 방사청이 방위사업 전반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방사청은 현역 군인 비중을 대폭 줄이고 핵심 보직에 민간 전문가를 채용하는 ‘문민화’를 추진 중이다.
◇ 전직 참모총장 줄줄이 구속…왜 해군만 걸리나
합수단이 7개월간 기소한 전현직 군인은 해군이 28명으로 육군(4명)·공군(6명)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해군은 전직 참모총장 2명이 구속기소됐고 군 서열 1위인 최윤희 합참의장도 해군 참모총장 시절 해상작전헬기 도입비리에 연루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합수단 출범의 직접 계기가 된 통영함에는 1천590억원이 투입됐다. 현재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214급 잠수함은 9척을 도입하는 데 3조7천억원이 든다. 해군 무기도입 사업은 천문학적 비용이 오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다 탑재되는 장비별로 구매가 진행돼 로비와 청탁이 개입할 여지가 많다.
합수단은 기수·계급 중심의 군 조직문화가 해군에 특히 두드러진다고 설명했다. 해군은 장교 배출 경로가 다양한 육군과 달리 장기복무 장교 대부분이 사관학교 출신이어서 선후배 간 결속력이 유독 강하다.
군 생활 상당 기간을 배에서 보내는 탓에 형성된 ‘함장문화’, 즉 “한 배에 타 생사를 함께 한다”는 공동체 인식도 결국 선후배·전현직 장교끼리 유착관계를 형성하는 단초가 됐다. 해군은 지난 4월 방산비리의 불명예를 씻겠다며 ‘명예해군 7대 윤리지침’을 제정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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