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렸으면… 그후 일상이 멈췄다”

“차라리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렸으면… 그후 일상이 멈췄다”

최선을 기자
입력 2015-04-06 23:44
수정 2015-04-07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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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세월호로 뒤바뀐 인생… 단원고 최윤민양 유가족

“지난 1년 세월호 유가족으로 산다는 건 가족들에게 무한한 책임감이자 멍에였습니다. 1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건 없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세월호 속에 살고 있으니까요.”(고 최윤민양 어머니 박혜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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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 최윤민양의 가족들이 3일 경기 안산시 정부합동분향소에서 단원고 학생들의 마지막 모습이 전시된 ‘하늘로 간 수학여행’ 보드판에 걸린 윤민양의 사진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다. 왼쪽부터 어머니 박혜영씨, 큰언니 최윤아씨, 아버지 최성용씨.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 최윤민양의 가족들이 3일 경기 안산시 정부합동분향소에서 단원고 학생들의 마지막 모습이 전시된 ‘하늘로 간 수학여행’ 보드판에 걸린 윤민양의 사진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다. 왼쪽부터 어머니 박혜영씨, 큰언니 최윤아씨, 아버지 최성용씨.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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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15일, 딸부잣집 막내딸 윤민이는 수학여행을 간다며 짐을 챙겨 나섰다. 그때만 해도 사랑하는 가족과의 영원한 작별일 줄은 몰랐다. 다음날 윤민이와 경기 안산 단원고 친구들을 태운 세월호는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고, 윤민이는 7일 만에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왔다. 그날 이후 가족들의 일상은 멈췄다. 중소기업 영업사원으로 일하던 아빠 최성용(53)씨는 가족대책위 장례지원분과위 부위원장으로 변신했다. 막내딸 대학 등록금을 벌겠다며 늦은 나이에 대형마트에서 일하던 엄마 박혜영(52)씨는 다른 유가족과 함께 미국 동포들을 만나 진상 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관심과 지지를 호소했다. 여섯 살 터울의 막냇동생을 끔찍하게 예뻐했던 큰언니(최윤아·24)는 직장을 그만둔 채 서울 광화문광장에 나와 진상 규명을 외쳤다.

박씨는 “평범한 가정에서 아이 키우고 직장 다니던 우리 가족이 지금은 투사가 돼 버렸다”면서 “진상 규명과 선체 인양 등 이번 일이 해결된다고 해도 일상으로 돌아갈 자신은 없다”고 말했다.

윤민이는 어렵게 낳은 막내였다. 박씨는 “외아들인 남편과 시부모님을 생각해 서른다섯에 제왕절개로 윤민이를 낳았다”며 “임신 전 6개월 동안 한약을 먹으며 안간힘을 썼는데 또 딸이어서 우리 부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었다”고 말했다. 이어 “5년 만의 출산이라 지혈이 잘 안 돼 수술실에서 배에 얼음덩이를 올려놨던 기억이 난다”며 “윤민이를 그렇게 목숨 걸고 낳았다”고 말했다.

윤민이는 어리광 한번 부리지 않는 내성적인 아이였다. 박씨는 “사고 이후 아이들의 동영상과 사진이 쏟아져 나왔는데 윤민이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며 “조용히 구석에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안산 합동분향소에 학생들의 휴대전화를 복구해 사진을 전시해 놓은 곳에도 윤민이의 사진은 한장뿐. 그는 “직접 보지 않았어도 마지막 순간이 계속 떠오른다”면서 “평생 이렇게 가슴 아프게 사느니 차라리 기억상실증에 걸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며 눈물을 흘렸다.

지난해 9월부터 가족대책위 임원으로 일하던 윤민이 아빠는 지난달 다시 직장을 구했다. 영업직으로는 나이가 많아 공사장에서 몸을 쓰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최씨는 “사고 이후 감정조절이 잘 안 돼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지만 1년 넘게 가장 역할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4~5일 안산부터 광화문광장까지 희생자 가족과 시민 등 1000여명이 참여한 도보행진에 최씨도 가족들과 함께 나섰다. 세월호 희생자 1주기를 앞두고 각종 행사가 많기 때문에 회사에 양해를 구한 뒤 적극 참여하고 있다. 최씨는 “딸 셋을 잘 가르쳐서 대학 보내고 취업시켜 좋은 사람이랑 짝 지워서 시집 보낸다는 평범한 꿈이 우리에겐 불가능한 일이 돼 버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참사 이후 심정을 페이스북에 일기 형식으로 써온 언니 윤아씨는 “지난 1년간 형제·자매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지 못한 건 ‘세월호 유가족’이란 주위 시선이 두려워서일 것”이라고 말했다. 참사 이후 8개월 동안 직장을 다닌 그는 “어느 날 직장상사가 ‘말 안 듣는 딸을 물에 빠뜨려 죽여 버리고 싶다’고 농담하는 걸 보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른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참사 1년이 지나 희생자 부모들도 절반 이상 직장으로 복귀한 지금, 윤민이 가족처럼 3명이나 4·16 가족협의회 활동을 하는 집은 흔치 않다. 윤아씨는 “지금이 아니면 윤민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다”며 “희생자 형제·자매들이 (희생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은 피켓들을 사진으로 찍어 12일 광화문광장에서 전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박씨는 “세월호 유가족이라는 이유로 공인 아닌 공인이 된 느낌”이라고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유족 대표인 것처럼 몸가짐을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참사를 쉽게 얘기하는 사람들과 인터넷 악성 댓글 등에 시달린 1년이었지만 윤민이 가족은 “유가족들을 지지하는 절반의 국민들 덕분에 버텼다”고 입을 모았다.

박씨는 엄격한 엄마이자 ‘안전 제일주의자’였지만 금쪽같은 막내딸의 안전을 지킬 수는 없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1년간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노안이 왔다. 물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 물 한 컵도 숨이 차서 마실 수 없다고 했다. 생계는 점점 어려워지고 주변 친구들을 만나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윤민이 가족은 아직도 할 일이 남았다며 거리로 나선다. 진상 규명이 오롯이 이뤄지지 않고 선체가 인양되지 않는 한 윤민이를 볼 낯이 없기 때문이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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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2015-04-07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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