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후스트레스장애 30%는 만성화…치료 체계 일원화·주치의 제도 필요
전재영(53)씨는 2003년 2월 대구지하철 참사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냈다. 7살이던 딸은 아내와 함께 대구에 있는 한 병원에 언어치료를 받으러 가다가 화를 당했다.실낱같은 희망
23일 경기 안산시 단원고 계단에 세월호 침몰 사고로 실종된 학생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메시지가 붙어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그는 “주위에서는 ‘이제 잊으라’고 말하지만 어떻게 쉽게 잊겠나. 평생 가슴에 묻고 살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면서 “가슴에 자식을 묻은 슬픔은 시간이 지나도 치유되지 않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8일째에 접어든 가운데 가까스로 세월호를 탈출한 안산 단원고의 생존 학생은 물론, 실종자 및 사망자 가족들과 안산 시민들은 극심한 스트레스 등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2차적인 피해를 막기 위해 일시적인 치료에 머물 것이 아니라 이들을 위한 ‘평생 주치의’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박종익 강원대병원 정신과 교수는 23일 “보통 어린 시절 대형 재난사고나 성폭행, 부모님과의 이별 등의 사건을 경험할 때 받는 정신적 충격은 성인이 돼도 지속적으로 나타난다”면서 “생존자들이나 간접 피해자들을 상태의 심각성에 따라 분류해 그에 걸맞은 치료를 하고, 치료가 당장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향후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평생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심민영 국립서울병원 심리적 외상관리팀 팀장도 “충격적인 사건 이후 겪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는 만성화되는 비율이 30%에 이르기 때문에 단순히 몇 달, 1년 이렇게 단기적으로 관리하고 말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관리를 해야 한다”면서 “특히 이번 사건처럼 피해자가 밀집해 있는 안산 지역에 대한 집중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기도와 안산시는 피해자와 유가족, 안산 시민의 정신적인 충격을 해소하기 위해 ‘통합재난심리지원단’을 운영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고려대 안산병원에 입원한 단원고 학생들에게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를 일대일 주치의로 지정해 사후 관리를 하겠다고 밝혔다.
아동정신과전문의인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은 “지속적인 보호를 위해서는 학생들의 담당 주치의를 변경해서는 안 된다”면서 “학생들이 학교에 복귀하면 주변 학교와 협의해 집단 상담을 실시하고 학생들만큼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유가족과 안산 시민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자조 모임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구지하철 참사나 세월호 침몰 사고 등 대형 재난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이 1회성에 그치지 않고, 중·장기적으로 이뤄지려면 대통령 혹은 국무총리 직속기구를 ‘컨트롤타워’로 만들어 심리치료 체계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채정호 가톨릭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대구지하철 참사로 34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유가족들도 700~800명에 이르지만 11년이 넘도록 이들의 정신건강에 대한 추적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면서 “대통령이나 총리실 직속 ‘트라우마심리 지원센터’를 신설해 대형 재난사고를 겪은 사람들이 현재 어디에 살고 있는지, 상태는 어떤지 등에 대해 정기적으로 꾸준히 추적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2014-04-24 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