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권 지킨 ‘착한 규제’ 경제논리에 풀리나

교육권 지킨 ‘착한 규제’ 경제논리에 풀리나

입력 2014-03-29 00:00
수정 2014-03-29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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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학교 3곳 바로 옆 호텔 부지 “유해업소 없는 호텔 건축해도 주변 유흥업소 들어설 텐데…”

“대통령도 직접 와서 보시면 왜 문제인지 아실 텐데….”

백영현 교장은 28일 서울 종로구 덕성여중 건물 6층에서 담장 밖 공터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옛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 부지였던 3만 7000여㎡ 땅에 대한항공이 ‘7성급 호텔’ 건설을 추진 중이다. 정부가 “유해업소가 없는 관광호텔은 학교 인근에 지을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겠다”고 지난 27일 발표하면서 덕성여중은 호텔과 ‘불편한 이웃’이 될 공산이 커졌다.

대한항공이 ‘7성급 호텔’ 건립을 추진 중인 옛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 부지(도로 옆 공터)의 모습. 덕성여중(①)과 덕성여고(②), 풍문여고(③) 등이 접해 있어 학교들은 “호텔이 건립되면 교육권이 심각하게 침해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대한항공이 ‘7성급 호텔’ 건립을 추진 중인 옛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 부지(도로 옆 공터)의 모습. 덕성여중(①)과 덕성여고(②), 풍문여고(③) 등이 접해 있어 학교들은 “호텔이 건립되면 교육권이 심각하게 침해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백 교장은 “호텔이 들어서면 아이들의 교육권이 침해받을 수밖에 없다”며 “외국 정상이 수시로 투숙하면 하루가 멀다 하고 경호 목적으로 보안 인력이 들어와 수업에 방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손톱 밑 가시’의 상징으로 ‘학교 주변 관광호텔 건설 제한’을 지목한 데 대해 교육계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호텔을 지으면 상권이 커지고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이유로 숙박업계와 지역 상인들은 반긴다. 하지만 경제논리와 교육논리가 맞선 현안인데도 ‘규제는 죄악’이라는 대통령의 말에 일방통행 식으로 추진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상반기 중 유해시설(단란주점, 도박장 등) 없는 관광호텔을 학교 인근 상대정화구역(학교로부터 50~100m) 내에 지을 수 있도록 관광진흥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숙박업 자체가 유해한 것이 아니라 불법적 성매매 등이 자행돼 나쁜 것”이라면서 “호텔을 짓되 불법 행위는 경찰이 단속하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계와 학부모의 생각은 다르다. 관광호텔 내 유해업소 입점만 허락하지 않아서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초등학교 인근 호텔 건립을 반대해 온 이종훈 양평한신아파트 입주자 대표협의회장은 “호텔에 묵는 외국인을 겨냥한 유흥업소가 우후죽순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소규모 관광호텔들이 불법 대실(숙박을 하지 않고 몇 시간 동안만 머무는 형태) 영업을 해 ‘러브호텔’처럼 변질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법규상 사각지대도 지적된다. 법이 개정돼도 절대정화구역(학교 정문 기준 반경 50m 이내) 내에는 호텔을 지을 수 없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하지만 덕성여중의 경우 정문에서 호텔 부지는 60m 거리이지만 학교 뒤편과 호텔은 맞닿아 있다.

물론 규제 완화에 찬성하는 목소리도 있다. 경기 용인의 P아파트 단지에서는 관광호텔이 들어서는 문제를 두고 주민들이 양분됐다. 분양사무실 관계자는 “호텔이 생기면 죽전역까지 상권이 이어져 호재가 될 것”이라며 “아이들이 스마트폰으로 유해물을 접하는데 호텔로 악영향을 받는다는 건 비약”이라고 말했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무작정 반대하면 교육계의 이기주의로 비칠까 봐 조심스럽다”면서도 “아이들이 유해 환경에 노출될까 우려하는 학부모들을 안심시킬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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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2014-03-29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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