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여론 따라 180°달라진 재벌총수 양형 이유

시대·여론 따라 180°달라진 재벌총수 양형 이유

입력 2014-02-26 00:00
수정 2014-02-26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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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횡령사건 1심 판결문서 국민여론 변화 암시” 분석

“SK그룹을 대표하는 피고인에 대한 처벌이 우리 경제계에 미치는 영향을 피고인의 형사 책임을 경감하게 하는 주요 사유로 삼는 데 반대한다”

계열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SK 회장 사건을 심리한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같이 언급했다.

서울남부지법 유제민 판사는 최근 논문 ‘법관의 양형판단과 국민 여론의 관계에 관한 법사회학적 시론(試論)’에서 이 대목을 두고 “국민 여론의 변화를 암시한 듯하다”고 분석했다.

26일 논문에 따르면 과거 판결문에선 재벌 총수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을 참작 사유로 언급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990년대 중반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에 연루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1심은 “위 피고인은 오랜 기간 기업활동을 통해 국내에서의 생산능력 증대 및 국외 수출 증대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고 판시했다.

같은 사건으로 기소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항소심도 “기업 및 기업가의 이익과 안전을 우선시하는 기업가들의 사고를 일차적인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다”고 언급했다.

당시 법원은 이 회장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김 회장은 1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고서 항소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으로 감형됐다.

이런 경향은 2000년대까지 이어졌다.

2003년 분식 회계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SK 회장의 1심은 “우리 경제의 성장에는 SK그룹 등 거대 기업집단들이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 피고인을 비난함에 있어 일정한 한계를 느끼는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최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벌 양형 공식’이라고 불리던 형량이었다.

하지만 경제민주화 논의가 활발해진 2010년대 들어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더욱 강한 처벌을 요구하는 여론이 판결에 반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에 대한 실형 선고가 그 신호탄이었다.

이 전 회장에 대한 1심은 “기업인의 경제 발전에 대한 기여를 도외시해서는 안 되지만, 이런 측면을 양형상 유리한 요소로서 과도하게 반영하는 것은 자칫 행위 책임의 정도에 들어맞지 않는 양형에 이를 수 있다”고 판시했다.

당시 재판부는 2009년 시행된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 기준상 권고 형량을 준수했다고 강조하며 징역 4년 6월을 선고했다. 이 전 회장은 항소심에서 징역 4년으로 감형돼 아직 상고심을 기다리고 있다.

유 판사는 논문에서 “재벌 총수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법관은 언론과 시민단체, 주주들의 사건에 대한 큰 관심을 몸소 느낄 수밖에 없다”며 “여론을 양형 판단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반영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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