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납치됐다는데…경찰, 신고내용 확인이 우선?

딸이 납치됐다는데…경찰, 신고내용 확인이 우선?

입력 2014-02-12 00:00
수정 2014-02-12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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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자 위치추적 시행 한달…실효성 ‘논란’

지난달 13일 오후 2시 16분께 평택시에 사는 A씨는 딸에게서 ‘납치됐다’는 전화를 받고는 떨리는 손으로 ‘112’를 눌렀다.

눈앞이 캄캄해진 A씨는 경찰이 딸의 위치를 파악해 한시라도 빨리 구출해 줄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경찰은 A씨 딸을 찾기는커녕 황당하게도 A씨에게 먼저 출동해 상황을 파악한 뒤 20분이 지난 오후 2시 36분께 A씨 딸의 휴대전화 위치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 사건은 다행히 누군가 A씨를 상대로 보이스피싱 사기를 시도한 것으로 판명나 오후 3시 49분께 종결됐지만 1시간 30여분간 A씨는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김포시에 사는 B씨도 같은달 30일 오후 11시 7분께 남편으로부터 ‘미안하다. 아기 잘 키워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남편이 자살하려는 것 같다”며 112로 신고했다.

이번에도 경찰은 남편의 위치를 파악하기에 앞서 신고한 지 5분이 지나서야 B씨에게 출동했다.

경찰은 문자메시지가 사실인지 확인한 뒤 신고 18분이 지난 오후 11시 25분께 B씨 남편의 위치를 추적했다.

다행히 B씨 남편이 마음을 돌리고 귀가해 오후 11시 41분께 사건은 종결됐으나 하마터면 경찰 내부 절차 탓에 시간이 지체돼 자살을 막지 못할 뻔했다.

경찰이 제3자 위치를 직접 추적할 수 있는 ‘LBS(위치기반서비스)’를 운영한 지 한달이 넘었지만 법규정을 지나치게 인식한 탓에 긴급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기지방경찰청은 지난해 12월 30일부터 제3자 위치추적을 할 수 있는 LBS시스템을 운영, 한 달간 1천58건을 신청받아 940건의 위치정보를 조회했다.

승인된 신청건은 대부분 자살의심, 납치·감금 등 긴급신고 사항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신고가 접수되면 위험에 처한 당사자가 아닌 신고자에게 먼저 경찰관을 출동시켜 상황을 따져본 뒤 긴급하다고 판단할 경우 당사자에게 경찰관을 급파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구조가 필요한 당사자의 ‘의사’가 확인돼야 제3자 위치정보를 조회할 수 있다는 규정 탓이다.

자살기도나 납치의심 상황에선 당사자 동의를 확인하기 어려워 신고자에게 먼저 출동해 대상자의 위험성 여부를 ‘확인’한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관련 규정에는 구조 대상자에게 ‘뚜렷한 위험’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선조치 후 위치추적 의사를 확인해도 된다는 단서 조항이 있지만 경찰이 법 규정을 지나치게 의식해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은 이 같은 LBS시스템 운영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 긴급상황 시엔 위치추적 등 조치를 먼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구조 대상자의 의사를 먼저 확인해야 위치추적이 가능하다는 법규정이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며 “최근엔 경찰도 ‘절차보다 생명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 하에 제3자 위치추적 요건을 완화해 가급적 선조치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한편 제3자 위치를 추적할 권한이나 시스템이 없던 경찰은 긴급상황 시 소방당국과의 핫라인을 이용해 위치정보를 조회했으나 2012년 관련법 개정 이후 지난해 12월 30일 오전 9시부터 LBS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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