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의 주일대사관 이전과정에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명부가 무더기로 발견되면서 그 분석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강제로 동원된 조선인들의 이름이나 주소, 직업 등을 적어놓은 강제동원 명부는 이미 정부나 민간에 방대하게 수집된 만큼, 발견 자체보다는 제대로 검증해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
17일 국가기록원과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등 지원위원회(이하 강제동원 피해조사 위원회) 등에 따르면 지금까지 수집된 명부 중 최대의 강제동원 명부이자 유일한 우리 정부생산기록은 1957∼1958년 당시 노동청이 강제동원 피해신고를 받아 작성한 ‘왜정시 피징용자 명부’다.
약 28만명이 수록된 이 명부는 신고접수 후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고 방치돼 50여년간 무용지물이었다가 2006년 2년 6개월에 걸쳐 2천명 이상의 시·군·구 공무원이 투입돼 전수조사를 거쳐 검증돼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증빙자료로 가장 많이 활용하는 자료로 재탄생했다.
이보다 더 방대한 강제동원 명부는 정부가 일본정부로부터 받아 국가기록원에 소장 중인 명부다.
정부는 1971년 피징용사망자연명부 인수를 시작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방일 전후인 1991∼1993년 4차례에 걸쳐 544권에 48만명이 수록된 명부를 일본정부로부터 넘겨받았다.
가장 먼저 인수한 피징용사망자연명부는 육군, 해군, 군속 등으로 동원됐다가 사망한 사람들의 명부로 육군과 해군으로 구분해 출신 지역별로 10권에 2만1천692명이 수록돼 있다.
1991년 넘겨받은 조선인노동자에 관한 조사결과는 1946년 일본이 지역별로 조선인 노동자에 대한 일제조사를 한 결과로 탄광 등 일본기업에 동원된 조선인들이 일본 지역·기업별로 모두 15권 6만9천766명 실려있다.
1992년 인계받은 일제하피징용자명부는 모두 3권, 8종으로 메이지광업, 아키타현 제국광업개발, 죠반탄전조선인노동자순직자명부 등 일본기업 별로 1만4천410명의 명단이 담겨있다.
유수명부는 구 일본 육해군 인사관련 자료를 넘겨받은 후생성이 관리하던 유수명부 중 1945∼1949년 사이에 조선인만 따로 빼서 재작성한 명부로 114권, 16만648명에 달한다.
1993년 인계받은 해군군속자명부는 마이크로필름 26롤에 10만788명을 담고 있으며, 임시군인군속계는 1945년 3월 1일 오전 0시 현재 일본군대에 동원돼 있던 군인·군속에 대해 호주가 면장 앞으로 보낸 신고서를 출신지역별로 묶은 것으로 103권에 4만6천164명이 수록돼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나 군부, 기업이 생산한 이들 명부의 정확한 수록내용과 함의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강제동원 피해조사 위원회 정혜경 조사2과장은 이와 관련해 발표한 논문에서 “명부들의 생산배경과 수록기준을 전혀 파악할 수 없고, 항목이 담은 함의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연구자도 없기 때문”이라며 “명부는 검증과 분석을 통해야만 제 모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중복등재자 확인, 일본에서 한국으로 인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마이크로필름 촬영상 오류 해결과 사례분석을 통한 심도있는 분석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 밖에 1975년 한국정부에서 지급된 대일민간청구권 보상금 관련 명부 중 지급결정대장 8천552명, 강제동원 피해조사 위원회가 소장한 335종의 명부 등도 주요 강제동원 명부로 꼽힌다.
정부가 아닌 민간이 수집한 명부도 방대하다. 1972년 8월 결성돼 일본 전역에 지역조사단을 두고 활동하는 일본의 시민단체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이 수집한 명부는 42만4천220명분에 달한다. 이들 명부 중에는 정부가 보유한 명부도 일부 섞여 있지만 정부보다 선제적으로 시민단체 차원에서 명부를 수집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연합뉴스
일제강점기에 강제로 동원된 조선인들의 이름이나 주소, 직업 등을 적어놓은 강제동원 명부는 이미 정부나 민간에 방대하게 수집된 만큼, 발견 자체보다는 제대로 검증해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
17일 국가기록원과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등 지원위원회(이하 강제동원 피해조사 위원회) 등에 따르면 지금까지 수집된 명부 중 최대의 강제동원 명부이자 유일한 우리 정부생산기록은 1957∼1958년 당시 노동청이 강제동원 피해신고를 받아 작성한 ‘왜정시 피징용자 명부’다.
약 28만명이 수록된 이 명부는 신고접수 후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고 방치돼 50여년간 무용지물이었다가 2006년 2년 6개월에 걸쳐 2천명 이상의 시·군·구 공무원이 투입돼 전수조사를 거쳐 검증돼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증빙자료로 가장 많이 활용하는 자료로 재탄생했다.
이보다 더 방대한 강제동원 명부는 정부가 일본정부로부터 받아 국가기록원에 소장 중인 명부다.
정부는 1971년 피징용사망자연명부 인수를 시작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방일 전후인 1991∼1993년 4차례에 걸쳐 544권에 48만명이 수록된 명부를 일본정부로부터 넘겨받았다.
가장 먼저 인수한 피징용사망자연명부는 육군, 해군, 군속 등으로 동원됐다가 사망한 사람들의 명부로 육군과 해군으로 구분해 출신 지역별로 10권에 2만1천692명이 수록돼 있다.
1991년 넘겨받은 조선인노동자에 관한 조사결과는 1946년 일본이 지역별로 조선인 노동자에 대한 일제조사를 한 결과로 탄광 등 일본기업에 동원된 조선인들이 일본 지역·기업별로 모두 15권 6만9천766명 실려있다.
1992년 인계받은 일제하피징용자명부는 모두 3권, 8종으로 메이지광업, 아키타현 제국광업개발, 죠반탄전조선인노동자순직자명부 등 일본기업 별로 1만4천410명의 명단이 담겨있다.
유수명부는 구 일본 육해군 인사관련 자료를 넘겨받은 후생성이 관리하던 유수명부 중 1945∼1949년 사이에 조선인만 따로 빼서 재작성한 명부로 114권, 16만648명에 달한다.
1993년 인계받은 해군군속자명부는 마이크로필름 26롤에 10만788명을 담고 있으며, 임시군인군속계는 1945년 3월 1일 오전 0시 현재 일본군대에 동원돼 있던 군인·군속에 대해 호주가 면장 앞으로 보낸 신고서를 출신지역별로 묶은 것으로 103권에 4만6천164명이 수록돼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나 군부, 기업이 생산한 이들 명부의 정확한 수록내용과 함의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강제동원 피해조사 위원회 정혜경 조사2과장은 이와 관련해 발표한 논문에서 “명부들의 생산배경과 수록기준을 전혀 파악할 수 없고, 항목이 담은 함의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연구자도 없기 때문”이라며 “명부는 검증과 분석을 통해야만 제 모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중복등재자 확인, 일본에서 한국으로 인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마이크로필름 촬영상 오류 해결과 사례분석을 통한 심도있는 분석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 밖에 1975년 한국정부에서 지급된 대일민간청구권 보상금 관련 명부 중 지급결정대장 8천552명, 강제동원 피해조사 위원회가 소장한 335종의 명부 등도 주요 강제동원 명부로 꼽힌다.
정부가 아닌 민간이 수집한 명부도 방대하다. 1972년 8월 결성돼 일본 전역에 지역조사단을 두고 활동하는 일본의 시민단체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이 수집한 명부는 42만4천220명분에 달한다. 이들 명부 중에는 정부가 보유한 명부도 일부 섞여 있지만 정부보다 선제적으로 시민단체 차원에서 명부를 수집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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