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민영은 땅소송 승소 이끈 청주시 제성윤씨

친일 민영은 땅소송 승소 이끈 청주시 제성윤씨

입력 2013-11-05 00:00
업데이트 2013-11-05 11:42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2년간 매달려 ‘결실’…”독립운동하는 심정…남편이 ‘제관순’이래요”

“승소요? 정말이예요? 남편 밥도 못 차려주고 전국을 누빈 보람이 있네요”

청주시청 도로시설과 제성윤(41·여) 주무관은 ‘친일파’ 민영은 후손의 ‘땅찾기 소송’ 항소심에서 청주시가 승소했다는 소식을 접한 5일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목소리에는 만감이 교차하는듯했다.

제씨는 2011년 3월 민영은의 직계 후손 5명이 청주 도심에 있는 12필지(총 1천894.8㎡)의 도로를 철거하고 토지를 인도하라며 청주시에 소송을 제기한 이후 이 사건 준비를 도맡다시피 했다.

그러나 1심에서는 민영은이 친일파 인사라는 점을 집중 부각하지 않으면서 패소의 쓴맛을 봐야 했다.

민씨 일가가 청주시에 토지를 기부했으며, 사용 수익도 포기한 만큼 이들 토지 소유권은 이미 청주시에 있다는 논리를 일관되게 펼쳤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청주시의 주장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 1심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항소심을 제기한 뒤 친일파 후손에게 이대로 알토란 같은 청주시민의 땅을 고스란히 빼앗길 수 없다고는 오기가 발동한 제씨는 이 소송에 ‘올인’했다.

자식에게 ‘산교육’을 하겠다는 심정으로 청주에 있는 도서관이라는 도서관은 모조리 뒤졌고, 성남에 있는 국가기록원에도 찾아가 항소심에 대비할 자료를 챙겼다.

인터넷을 활용해 민영의 친일 행적 자료도 빠짐없이 뽑아냈다. 민영은의 친일 행적에 초점을 맞췄고, 문제의 토지가 친일 환수 재산으로 국고로 귀속된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를 펴나갔다.

문제가 된 청주중학교 앞 도로가 이미 1920년 이 학교 개교 때부터 진입로로 사용됐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직접 청주중학교 교장을 만나 인터뷰하는 등 발품도 아끼지 않았다.

하루종일 한 건의 증거도 찾아내지 못할 때는 온몸에서 기운이 쭉 빠지고, 맥이 풀렸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더 악착같이 항소심 준비에 매달렸다.

단순히 땅 소유권을 둘러싼 소송이 아니라 ‘친일의 역사’를 단죄하는 싸움에서 ‘과오’를 남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씨는 “국가재산을 친일파에게 빼앗기지 않는 건 오로지 내 손에 달렸다는 생각으로 임했다”며 “남편이 제게 ‘독립투사’ 같다며 ‘제관순’이란 별명까지 지어줬다”고 회상했다.

그는 “100년이 지난 뒤에 친일파의 후손이 땅을 돌려달라고 한다는 건 국가적 차원에서도 부끄러운 일이다”이라며 “진작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제때 청산했다면 이런 소송 때문에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그는 앞으로도 비슷한 소송이 제기될 수 있는 만큼 지방자치단체가 ‘일제 잔재 청산팀’을 꾸려 대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민영은의 직계 후손 5명은 2011년 3월 청주 도심인 청주중학교와 서문대교, 성안길 부근에 있는 12필지(총 1천894.8㎡)의 도로를 철거하고 토지를 인도하라며 소송을 냈다.

청주지법 1심 재판부는 민영은 후손의 손을 들어줬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5일 원심과 달리 원고 패소 판결했다.

연합뉴스

많이 본 뉴스
핵무장 논쟁, 당신의 생각은?
정치권에서 ‘독자 핵무장’과 관련해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북한의 밀착에 대응하기 위해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평화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반대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독자 핵무장 찬성
독자 핵무장 반대
사회적 논의 필요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