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사총연합 페이스북에 등장한 3m 청진기 사진.
최근 전국의사총연합(전의총)은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이 같은 사용 설명과 함께 실제 3m가 넘어 보이는 긴 청진기 사진을 올렸다.
아울러 이들은 “아청법(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아시죠. 청진 시에 여자 환자 분이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고발한 경우 성추행으로 인정돼 벌금 수십만원을 내고 10년간 취업·개설이 불가능합니다”라며 특수 제작 청진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처럼 의사들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을 통해 대놓고 성범죄 관련 현행법을 비웃는 이유는 무엇일까.
논란은 ‘의료인’을 성범죄자 취업제한 직종에 추가한 개정 아청법이 지난해 8월 시행에 들어가면서 시작됐다. 성범죄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의사나 간호사는 10년동안 다시 의료 분야에서 취업 또는 개업할 수가 없게 된 것.
실제로 개정 아청법 적용으로 의료인 역할을 할 수 없게된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전의총에 따르면 개원의 A씨는 2011년 11월 성인 여성을 성추행한 혐의로 작년 10월 벌금 300만원형을 선고받은 뒤 최근 의료기관 개설 허가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했다.
전의총 등 의료계 일각에서 제기되는 현행 아청법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 우선 아동·청소년의 성(性)을 보호한다는 아청법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성인 대상의 가벼운 성추행 등까지 ‘10년 취업·개설 제한’의 근거로 삼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주장이다. 현행 아청법 제 56조 1항은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뿐 아니라 성인 대상 성범죄의 경우라도 ‘형 집행 종료 시부터 10년 동안 취업 또는 사실상 노무를 제공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전의총은 지난달말 성명에서 “성인대상 성범죄 중 벌금형 정도가 적용되는 가벼운 추행이나 간통죄 등이 10년간 취업·개설 금지 사유인 것은 아청법의 취지와 전혀 관련이 없고, 오히려 무리한 법 적용으로 억울한 사람을 늘리는 악법”이라며 “이러한 법 조항을 노리는 이른바 ‘꽃뱀’ 같은 범죄도 늘어날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불만은 법 적용 시점에 대한 것. 아청법 적용 기준이 성범죄 발생 또는 적발 시점이 아닌 형 확정 판결일로 규정돼 작년 8월 2일 법 시행 시점 이전의 의료인 성범죄에 대해서도 사실상 ‘소급’ 적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의료인들의 반발에 일단 시민단체 등은 ‘난센스’라는 반응이다. 남은경 경실련 사회정책팀장은 “논의하기 조차 부끄러운 주장”이라며 “경실련 소속 변호사에게 의견을 구해봤지만, 성인대상 성범죄자가 아동·청소년 대상 범죄 가능성도 있는 만큼 아청법에 성인대상 성범죄자를 포함시킨 것에 문제가 없고, 벌금 300만원의 형이 결코 가볍다고도 볼 수 없다는 의견”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법조계 일각에서는 기본권 제한 정도나 형평성 측면에서 의료계의 문제 지적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법무법인 소속 김 모 변호사는 “취업제한 규정인 아청법 제56조 제1항 각호상 해당 업종이 유치원·학원 등 아동청소년 관련 직군인 반면, 의료인의 경우 포괄적으로 모든 의료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며 “이는 아청법의 취지에 맞지 않고 헌법상 ‘기본권 제한의 최소침해’ 원칙에도 위반될 소지가 있다”고 해석했다.
따라서 아청법상 취업제한 대상 의료인의 범위를 ‘소아전문의, 가정의학전문의’ 등 아동·청소년을 주로 상대하는 전문의로 축소하지 않는한 과도한 직업의 자유 제한으로 위헌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또 김 변호사는 “의료계의 지적대로 의료인이 이전에 직업제한 규정에 추가된 직군과는 달리 일종의 소급적용을 받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의료인이 취업제한 대상에 포함되기 전 법률의 부칙 제5조의 경우 “개정규정은 법 시행 후 최초로 아동·청소년 대상 또는 성인 대상 ‘성 범죄를 범하여’ 형이 확정된 자부터 적용한다’고 규정한 반면, 지난해 의료인이 추가된 개정법의 부칙 제3조의 경우 “개정규정은 법 시행 후 최초로 아동·청소년 또는 성인 대상 성범죄로 형 또는 치료감호를 ‘선고받아 확정된’ 사람부터 적용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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