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모인 설연휴에 잇따라 끔찍한 범행 ‘충격’
‘층간 소음’ 문제로 갈등하던 이웃을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지르는 강력사건이 잇달아 발생했다. 그것도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설 연휴에 끔찍한 범행이 벌어져 충격을 더하고 있다.아파트나 다가구 주택 등 공동주택에서 층간 소음은 이웃 간 분쟁의 주된 원인이다. 수도권의 상담센터 접수 건수만 하루 평균 36건에 달한다.
그러나 층간 소음 문제를 해결할 법률은 미비한 상태다. 정부는 소음 피해 인정기준을 설정해 분쟁을 조정하는 한편 상담센터 운영으로 해결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층간 소음 갈등을 개인 간 다툼이 아닌 사회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층간 소음 다툼이 ‘이웃사촌을 원수로’ = 설 연휴가 시작된 9일 명절을 맞아 부모를 뵈러 온 30대 형제가 층간 소음 때문에 이웃과 다투다 흉기에 찔려 숨졌다.
서울 중랑경찰서에 따르면 김모(45)씨는 이날 오후 5시40분께 중랑구 면목동의 한 아파트 앞 화단에서 위층 주민 김모(33)씨와 김씨 동생(31)을 흉기로 찌르고 달아났다. 피해자 형제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과다 출혈로 숨졌다.
피의자 김씨는 이날 내연녀 A씨의 동생이 사는 이 아파트를 찾았다. 마침 A씨 동생이 층간소음 때문에 인터폰으로 윗집과 다투자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
윗집에는 노부부만 살았으나 이날은 명절을 맞아 아들과 며느리, 손자들이 찾아온 탓에 평소보다 북적였다.
피의자 김씨는 아파트 복도에서 김씨 형제와 옥신각신하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나가서 얘기하자”며 이들을 밖으로 불러내 아파트 화단에서 흉기로 형제를 차례로 찌른 뒤 행방을 감췄다.
경찰은 휴대전화 실시간 위치추적으로 김씨를 뒤쫓고 있지만 김씨가 휴대전화를 끄다 켜다를 반복하고 있는데다 연휴로 인해 통신사 협조를 받아야 가능한 통화내역 파악이 안 돼 검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설인 10일에는 서울 양천구 목동의 3층짜리 다가구주택에서도 층간 소음 갈등으로 인한 방화사건이 발생했다.
이 주택 1층에 사는 박모(49)씨는 이날 오후 1시30분께 2층 홍모(67)씨 집에 들어간 뒤 휘발유가 든 맥주병을 거실에 던지고 불을 붙였다. 당시 집에는 설을 맞아 부모를 찾은 홍씨의 자녀와 두살배기 손녀 등이 있었다.
불은 17분여만에 진화됐지만 화재로 홍씨 부부가 크게 다쳤고 자녀 등 3명도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조사결과 박씨와 홍씨는 4년 전부터 갈등을 겪어 온 것으로 나타났다.
홍씨 집에서 샌 물로 피해를 봤다며 소송으로 보상금까지 받은 박씨는 범행 1주일여 전부터 층간 소음으로 불면증에 시달려 온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미혼으로 가족과 직업 없이 혼자 사는 박씨는 당시 홍씨를 위협하려고 흉기까지 들고 갔으나 휘두르진 않았다고 경찰은 밝혔다.
그는 현재 묵비권을 행사하며 진술을 거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계속 2층에 불만이 있던 박씨가 설 당일 들려오는 소음을 참지 못하고 범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은 박씨에 대해 현주건조물방화치상 혐의로 11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피해구제 장치 미흡…”사회문제로 접근해야” = 이웃 간 흔한 분쟁으로만 여겨졌던 층간 소음 갈등이 살인·방화사건으로까지 치달으면서 단순히 개인 간의 사소한 다툼이 아니라 심각한 사회문제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 광주의 한 아파트에서 층간 소음문제로 다투던 주민이 이웃을 흉기로 찌르는 사건이 발생하고 작년 9월 부산의 빌라에서도 같은 문제로 이웃을 폭행한 40대가 구속되는 등 층간 소음 갈등이 끔찍한 결말로 이어지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층간 소음은 피해 정도를 입증하기 어렵고 만족스러운 조정액을 보상받기 어려운 데다, 원인자에게 소음발생 자제를 요청해도 이를 받아들이기보다는 무시하는 경우가 많아 갈등이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 실정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국민 65%의 주거형태가 아파트나 다가구주택 등 공동주택이기 때문에 누구나 층간 소음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이미 포털사이트 등 온라인에선 층간소음과 관련해 법률 상담을 해주는 곳이 많다. 소송절차와 관련 법률상식까지 알려준다. 그만큼 수요가 많다는 의미다.
환경부가 지난해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작년 3월부터 5개월간 환경부 산하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접수된 관련 상담건수는 수도권에서만 3천여건으로 하루 평균 36건의 신고가 들어왔다.
전문가들은 강력범죄로까지 이어지는 층간 소음 갈등에 대해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층간 소음이 원인이라도 갈등이 지속하면 단순한 생활 문제가 아니라 상대에 대한 원한이 생길 수 있다”며 “우발적인 측면이 있지만 내적 불만이 쌓이면서 극단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런 문제는 상대방의 대응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서로 이해하고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현재 층간 소음 문제를 다루는 법률은 따로 없다. 대신 환경부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가 2005년부터 피해 인정기준을 정하고 있다.
하지만 기준치가 현실과 동떨어져 2002년부터 최근까지 층간 소음 문제로 접수된 309건의 조정신청 중 피해가 인정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이르면 오는 3월부터 소음의 측정 간격을 5분에서 1분으로, 기준치도 주간 40㏈(데시벨), 야간 35㏈로 크게 낮추기로 했다.
최고소음도 기준도 신설해 주간 55㏈, 야간 50㏈의 소음이 순간적으로 발생해도 피해를 인정키로 했다. 55㏈은 성인이 거실에서 뛸 때 나는 정도의 소음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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