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보상법 관련 하급심 판례 엇갈려… 민변, 일부조항 위헌법률심판 신청 준비중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지난달 국회의원을 관두기 전 마지막으로 발의한 긴급조치 보상법안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긴급조치는 박정희 독재 정권에 항거하는 세력을 탄압하려는 것이었기 때문에 법안 명칭도 보상법이 아니라 국가의 범죄를 전제한 배상법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라 나왔다.
한 글자 차이의 단어 선택은 30~40년 전 현대사를 어떻게 재조명할 것인가와 관련되는 민감한 문제다.
이는 비슷한 기존 법률의 해석을 놓고 물밑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법리 다툼의 연장선에 있기도 하다.
◇비슷한 사례는 = 과거사를 청산하기 위한 여러 법률을 입법하는 과정에서 법률 성격을 보상법으로 할지, 배상법으로 할지 항상 논의가 벌어지곤 했다.
보상은 국가의 합법적인 행위로 특별히 희생된 개인에게 손실을 갚아주는 것이다. 이를테면 토지수용에는 보상을 한다.
반면 배상은 국가의 위법한 행위로 발생한 손해를 보전해주는 것이다.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
앞서 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광주민주화운동보상법)과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민주화운동보상법)은 모두 배상법이 아닌 보상법으로 제정됐다.
특히 민주화운동보상법은 민주화운동을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킨 활동’이라고 정의했을 뿐 국가의 불법행위를 뚜렷하게 전제하지 않았다.
다만 1990년 1월 제정된 광주민주화운동보상법은 5년 후 제정된 5·18 민주화운동특별법 6조에서 ‘보상을 배상으로 본다’고 규정해 성격이 배상법으로 바뀌었다.
◇엇갈리는 판결 = 민주화운동보상법에 따라 보상을 받은 사람이 다시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지는 하급심 판결이 엇갈린다.
판결이 서로 다른 것은 근본적으로 민주화운동보상법이 배상법이 아니라 보상법이기 때문이다.
표면에 드러난 쟁점은 ‘신청인이 동의해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한 결정은 민주화운동으로 입은 피해에 대해 민사소송법상 재판상 화해가 성립한 것으로 본다’는 18조 2항 규정이다.
지난 5월 서울고법 민사22부(여상훈 부장판사)는 해고된 동일방직 노동조합원 22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항소심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청구를 각하하거나 기각했다.
재판부는 민주화운동보상법에 따라 이미 생활지원금을 받은 원고들이 국가와 화해를 한 셈이어서 소송을 제기할 권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최근 서울고법 민사16부(최상열 부장판사)는 ‘문인 간첩단 조작사건’에 연루된 7명이 제기한 국가 상대 손배소송에서 “국가는 총 6억9천6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국가가 보상금을 지급해 적극적 손해와 소극적 손해를 보전했더라도 정신적 손해(위자료)까지 보전한 것은 아니라고 해석했다. 재판상 화해의 범위를 제한한 것이다. 아직 대법원 판례는 나오지 않은 상태다.
◇학계·법조계 견해는 = 법안 발의 상태인 긴급조치 보상법의 성격을 배상법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긴급조치 피해자와 유족들이 청구한 재심에서 수차례 무죄가 선고됐으며 이는 사법부가 긴급조치를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정한 결과인 점을 근거로 든다.
이런 주장은 민주화운동보상법의 성격도 광주민주화운동보상법처럼 배상법으로 바꿔야 한다는 견해로 이어진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거사를 청산하려면 100% 배상법으로 해야 한다”며 “현재 관점에서 긴급조치 보상법을 새로 만드는 것은 역사를 과거로 후퇴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이어 “민주화운동보상법에 따른 보상금은 수억원에 달하는 국가 배상금에 비해 현저히 낮은 상징적인 수준에 그쳐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긴급조치 변호인단 조영선 변호사는 “민주화운동보상법 18조 2항의 재판상 화해는 위헌성이 다분하다”고 강조했다.
조 변호사는 항소심이 진행 중인 긴급조치 피해자 오종상(71)씨의 국가 상대 손배소송에서 민주화운동보상법 일부 조항에 관한 위헌법률심판 신청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