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밝혀
“상해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처음 사용한 의미는 왕정에서 공화제로 이행한 중요한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이완범(오른쪽)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 교수는 1919년 4월 10일 중국 상하이 조계지 내 허름한 셋집에서 열린 임시정부의 첫 의정원(국회)에서 결정한 국호의 의미를 1일 이렇게 설명했다. 이 교수는 “당시 임시정부 내부에서 왕정복귀의 주장이 적지 않았지만 신석우와 조소앙, 여운형의 반대로 공화제인 대한민국으로 국호를 정할 수 있었던 것”이라며 “망명정부였지만 민권의식이 성장했던 결과를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독립운동가 신석우 의원이 대한민국을 국호로 하자고 제안했으며, 표결을 통해 대한민국이 국호로 채택됐다고 알려졌지만, 독립운동가이자 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낸 조소앙(趙素昻·왼쪽·1887~1958) 선생은 자서전에서 대한민국이라고 명명한 사람은 자신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조소앙의 ‘자전’(自傳)과 ‘회고’(回顧)에 따르면 ‘나는 의정원의 창립자로, 10조 헌장(임시헌장)의 기초자로, 대한민국의 명명론자로, 위원제의 주창자’였다고 주장했다.”고 소개했다. 이 교수는 오는 7일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주최로 열리는 광복 67주년 기념 학술심포지엄에서 발표할 연구논문 ‘국호로 본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대한민국’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대한제국은 조선왕국·대한민국 이어준 징검다리”
이 교수는 “대한제국은 조선왕국과 대한민국을 이어준 징검다리였으며 그 사이에 역시 징검다리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해방 후 1948년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채택하는 과정에서도 재차 왕정복귀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남북통일정부 구성을 호소했던 김구를 견제하던 이승만이 여러 논의를 중단시키고 대한민국 안을 통과시켰다.”고 이 교수는 지적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2012-08-02 2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thumbnail - “한번 더?” 안은진에 뽀뽀 강요 ‘런닝맨’에 ‘문제없음’ 결론…쟁점은 “자발적”[이슈픽]](https://img.seoul.co.kr/img/upload/2026/10/29/SSC_20261029173755_N2.jpg.webp)



![thumbnail - 그냥 나왔다더니…대실 20분 만에 환불, 객실엔 샤워 흔적 [사연잇슈]](https://img.seoul.co.kr/img/upload/2026/10/29/SSC_20261029135413_N2.jpg.webp)









![thumbnail - “전작권 전환 시기, 한미 정상 합의 발표 가능성… 농축우라늄 수입 급감, 공장 짓기부터 시작을”[김미경의 다른 시선]](https://img.seoul.co.kr/img/upload//2026/10/29/SSC_20261029000926_N.png.web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