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친정아빠’ 된 경찰관

탈북자 ‘친정아빠’ 된 경찰관

입력 2012-03-30 00:00
수정 2012-03-30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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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삼산경찰서 이갑희 경위 결혼식때 신부 손 잡고 길 인도

지난 24일 인천 남구 주안동의 한 예식장. 마흔일곱의 신부가 웨딩마치에 맞춰 조심스레 걸음을 뗐다. 이갑희(57·인천 삼산경찰서 보안계장) 경위가 손을 잡고 길을 인도했다. 탈북자인 신부 이씨와 이 경위가 인연을 맺은 것은 2008년. 보안 업무를 담당하던 이 경위가 중국과 베트남·캄보디아를 거쳐 어렵게 한국에 온 이씨의 신변 보호를 맡게 되면서부터다.

이갑희 경위
이갑희 경위
●위궤양 치료 도우며 쌀·생필품 지원

그때부터 이 경위가 이씨를 보살피면서 둘은 부녀처럼 지냈다. 탈북 후 수없이 끼니를 거르고, 숱한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살아온 이씨가 위궤양으로 고생할 때도 이 경위는 무료 진료가 가능한 병원을 찾아다니며 치료를 도왔다. 명절이나 행사 때 들어오는 쌀과 생필품을 따로 챙겼다가 이씨 집에 슬쩍 놓고 가기도 했다. 이 경위는 “식사가 불규칙하고, 신변 위협의 스트레스 때문에 위장병을 앓는 탈북자들이 많다.”면서 “이씨 역시 건강이 안 좋아 고생하는 것을 지켜보는 게 가장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식당에서 일하던 이씨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알고 먼저 달려간 것도 그였다. 이 경위는 “스푼(수저)이나 ‘와리바시’를 갖다 달라는 손님들의 말을 이씨가 못 알아듣자 불친절하다며 해고하려는 식당 주인을 설득하기도 했다.”며 씁쓸해했다. 연평도 포격 등 북한 관련 사건이 터질 때마다 불안해하는 이씨를 다독이며 의지처가 돼 주기도 했다.

이씨는 그런 이 경위를 마치 친정아버지라도 되는 양 따르며 의지했다. 이번에도 이씨는 “평소 아버지처럼 대해 주신 만큼 이번에도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들어가 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엔 멋쩍어하며 사양하던 이 경위도 결국 이씨의 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친딸 시집 가는 것처럼 기쁘고 뿌듯”

이 경위의 주선으로 삼산경찰서 보안협력위원회 위원들도 하객으로 참석해 가족석을 지켰으며 직원들이 모은 축의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씨와 시어머니는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경위는 “탈북자가 아닌 딸이 시집 가는 것처럼 기쁘고 훈훈하다.”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직업적 책임감 이상의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2012-03-3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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