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 이기려 애썼지만…회사는 묵묵부답

’공황장애’ 이기려 애썼지만…회사는 묵묵부답

입력 2012-03-14 00:00
수정 2012-03-14 11:3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14

지하철 투신 기관사 유족ㆍ동료 “그렇게 힘들어했는데…”

“동생은 문제를 극복하려고 혼자 노력을 많이 했어요. 회사에 힘들다는 신호도 충분히 보냈습니다.”

공황장애를 앓다 지하철에 투신해 사망한 기관사 이모(43)씨의 형(46)은 “동생의 죽음은 자살이 아닌 산재”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13일 빈소에서 만난 이씨의 유족과 동료들은 고인을 ‘조용하고 말없이 자신의 일을 하는 책임감 강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이씨는 95년 도시철도공사에 전자 업무 담당으로 입사해 2006년 기관사로 전직했다. 3년을 일한 뒤 ‘몸이 안 따라준다’며 괴로움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이씨가 앓던 공황장애는 현실적으로 위험 대상이 없는데도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 극도의 공포감으로 자제력을 잃고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정신질환의 일종이다.

지하철 기관사는 이미 2004년 공황장애가 산업재해로 공식 인정될 만큼 이 질환에 대한 노출 위험이 심각한 직종이다.

이씨의 동료 최윤용(40)씨는 “이씨가 담당했던 5호선 지하철은 열차가 계속 지하로만 다니고 구간 자체가 길어 3~4시간씩 운행을 해야 해서 기관사들이 더욱 힘들어한다. 이미 동료 기관사 4명이 공황장애로 전직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밀폐된 공간에 들어가는 것을 힘들어했다. 운전도 하지 못하게 돼 승용차를 팔고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아이들과 놀이공원에 가도 지하로 들어가는 놀이기구는 타지 못했다.

이씨의 아내 이모(41)씨는 “남편이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지쳐서 아이들과 제대로 놀아주지도 못했지만 이겨보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헬스장에 다니며 운동을 하고 산악회에 가입하는가 하면, 홀로 사는 노인과 저소득층 가정의 도배를 해주는 봉사활동도 시작했다.

지난해 6월 공황장애 진단을 받은 뒤에는 유급 휴가까지 모두 신청해 휴식을 취하며 극복하려 애썼다고 유족은 말했다.

그러나 올해 초 내근직으로의 전직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씨는 크게 상심했다. 아내 이씨는 “신청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겠지만 남편은 몸 상태가 그랬는데 어떻게 누락시킬 수 있느냐”고 말했다.

11일 오후 4시께 야간 근무를 위해 출근한 이씨는 다음날 오전 7시55분께 근무를 마치고 아내에게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들어가겠다’는 전화를 한 뒤 지하철 선로에 몸을 던졌다.

이씨의 형은 “가정도 화목하고 개인적으로 어려움을 토로하는 일도 없었다. 죽음을 암시한 적도 없다”며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을 무척 싫어했던 동생의 성격상 동료 기관사가 모는 열차에 투신했다는 것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 정신적 문제로 인한 충동적인 행동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 회사 측에서는 위로의 말조차 하지 않았다. 동생의 몸 상태를 회사에서 배려해줬거나 순환 보직 제도 등이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아직 어린 조카들에게 아빠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서라도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산재로 인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남북 2국가론’ 당신의 생각은?
임종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최근 ‘남북통일을 유보하고 2개 국가를 수용하자’는 내용의 ‘남북 2국가론’을 제안해 정치권과 학계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반헌법적 발상이다
논의할 필요가 있다
잘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