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일꾼, 유령을 거부하다

보이지 않는 일꾼, 유령을 거부하다

입력 2011-09-03 00:00
수정 2011-09-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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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홍명교 지음 아고라 펴냄

화장실에 서서 일 보는 남자들의 가랑이 사이로 청소 노동자들이 밀대를 쓱쓱 밀어 넣어가며 청소를 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청소 노동자들이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인 아줌마라서’란 설이 그동안 우세했다. 하지만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아고라 펴냄)는 청소 노동자들이 다름 아닌 유령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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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홍명교(28)씨는 요즘엔 ‘거의 씨가 말랐다’는 학생 운동권 출신이다. 2003년 고려대 경영학과에 입학해 2005년 경영대 학생회장을 지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명예 철학박사 학위 수여 반대 시위를 주도하다 징계를 받기도 했다.

홍씨는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예장동 문학의 집에서 “첫 강의 시간에 교수가 ‘우리 학교 왔으면 벤츠 정도는 타 줘야지, 안 그래?’라고 말해 너무 충격 먹었다. 그 뒤로 수업에 잘 안 들어가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최고경영자(CEO)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주위에 너무 많았다. 경영대란 공간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든 술자리와 모임에 빠지지 않았더니 어느새 학생회장이 되어 있더라.”며 웃었다.

‘이명박 라운지’(고대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기부한 돈으로 조성한 공간)에서 공부하다가도 한 발짝만 벗어나면 마주치게 되는 노동자들의 삶에 괴로웠다는 그는 결국 4학년 때 학교를 도망쳐 나왔다. 지금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공부 중이다.

‘자발적 퇴교’ 선언을 했던 김예슬씨는 그의 대학 후배. 홍씨는 신문에서 김씨의 대자보 내용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청소 노동자와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야말로 대학생 자신, 20대 자신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홍씨가 청소 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새내기이던 2003년 ‘뼈 빠지게 일했더니 월급 54만원 웬말이냐’는 내용의 교내 플래카드를 보고서였다. 플래카드를 건 측은 ‘불철주야’(불안정노동 철폐를 주도할 거야)란 학생모임이었다. ‘불철주야’에 참여하면서 홍씨는 ‘유령’이 아니라 내 주변의 할아버지, 할머니인 청소 노동자들과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게 된다. 이후 학교 내의 시설관리 노동자들과 학생들의 연대 활동을 폈다.

대학교 청소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이 없는 상태에서 최저임금도 제대로 못 받으며 불안정한 노동 조건에 시달리는 사실이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킨 것은 홍익대 청소 노동자 170여명이 집단 해고를 당한 사건 때문이었다. 트위터와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확산된 홍익대 사건은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 세력’으로 더욱 주목받게 된다.

영화배우 김여진씨는 “평소 마주쳤던 청소노동자들의 울분을 가슴속 어딘가에 담고 있다가 홍대 사태를 보고 ‘빵 터졌다’”며 농성에 가세했다. 이를 계기로 ‘소셜테이너’(socialtainer·사회참여 연예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생겨났다.

홍씨는 소셜테이너에 대해 “침묵하고 지켜보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면서 “앞으로 노동자운동이 어떻게 대중적 지지를 얻어낼 수 있는지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새롭고 대단한 대안이 되기는 어려우며 한계지점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생이란 위치에서 바라본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연대의 기억인 자신의 책 ‘유령 ’이 작은 희망이 되기를 기대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책에는 홍씨의 글뿐 아니라 박건웅, 심흥아, 전지은씨의 단편만화 3편이 같이 실려 불안정한 21세기 청춘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담아냈다.

한때 ‘실천하는 젊은 지성’으로 불렸던 대학생은 이제 ‘스펙쌓기의 노예’로 폄하된다. ‘유령’은 각 세대의 불행을 전제로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는 ‘세대론’을 경계한다. 그리고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아파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동시에 아프지 않은 것이 바로 청춘이라고 말한다. 1만 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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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수기자 geo@seoul.co.kr
2011-09-03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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