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야 그만~’..구제역 매몰지 떠내려갈라

‘비야 그만~’..구제역 매몰지 떠내려갈라

입력 2011-06-23 00:00
수정 2011-06-23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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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전에도 붉은색 물이 하천에서 발견된 적이 있어 불안했는데..”

장맛비가 내린 23일 오후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홍천강 상류 양덕천을 끼고 자리 잡은 강원도 홍천군 남면 마을.

2만여 마리에 가까운 돼지와 소를 묻은 남면지역에는 지난 22일부터 이날 현재까지 50mm에 육박하는 누적강수량을 보이고 있다.

시간당 10mm의 녹록지 않은 비를 뚫고 유치2리 마을회관에 들어서자 아이돌 스타들의 촬영지로 유명세를 더하던 수려한 마을풍경은 오간 데 없이, 구제역으로 매몰된 가축무덤이 비로 질퍽질퍽해진 채 자리 잡고 있었다.

140가구 40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유치2리 마을은 20여 축산농가 중 6곳의 소 280여 마리, 돼지 1만3천300여 마리가 매몰처분돼 수려했던 고향산천은 초토화된지 오래라고.

마을 주민들은 올해 초 구제역이 발생한 이후 물을 끓여 먹거나 인근 마을에서 식수를 얻어와 먹을 정도로 불편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마을회관 앞에서 만난 마을이장 이왕구(58)씨는 “상수원 보호구역과 가까운 곳에 매몰지가 있어 주민들이 침출수 등으로 걱정이 많았지만 이번에 장맛비까지 시작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장마 전에도 붉은색의 물이 잠시 하천에서 발견된 적이 있어 식수는 물론 빨래도 마음 편히 못하고 있다”라며 “매몰 초기 수질검사를 하고 5개월이 지난 이후 지금까지 검사가 이뤄지지 않아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함께 있던 이강실(54)씨도 “아무리 매몰지 주변을 잘 관리했다고 하더라도 물은 땅밑으로 스며들게 돼 있다”라며 “구제역 파동 이후 마을 곳곳에 있는 매몰지 주변 주민들은 하루빨리 상수도가 설치되길 바라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곳에서 10여 분 가량 차로 달려 만날 수 있는 상수원 취수원 상류 시동2리 양덕천 인근 매몰지는 당장에라도 하천물이 덮칠 듯 위태로웠다.

양덕천에서 불과 30m 정도 떨어져 설치된 매몰지는 최근 내린 비로 불어난 하천과 더 가까워졌고 앞으로 많은 비가 내릴 경우 매몰현장이 침수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주민들은 매년 비가 오면 잠겼던 곳에 소 60여 마리를 매몰처분하자 군청에 이전을 요구해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차량으로 10여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인근 돈사의 경우 구제역으로 돼지 1만3천여마리를 묻어 높이 10m 가량의 거대한 무덤을 이루고 있었다.

비닐과 거적으로 촘촘하게 덮인 매몰지는 비교적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가까이 갈수록 악취가 진동하고 바로 옆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는 빠르게 불어나면서 하류로 굽이쳐 흘려 아슬아슬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마을 하류에서 농작물을 출하하던 원모(51)씨는 “농사꾼들이 지하수가 얼마나 오염됐는지 알 수 없어 이웃들이 물을 가평 등지에서 실어와 먹고 있는 실정”이라고 하소연했다.

도내에서 가장 많은 구제역 매몰손해를 입은 횡성지역도 상황은 마찬가지.

돼지 2만여 마리를 묻은 강림면 소사1리 매몰지는 그나마 주변에 침출수나 핏물이 흐른 흔적은 보이지 않았지만, 땅속에서 올라오는 악취는 코끝을 찡그리게 했다.

마을회관에서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이병헌(76)씨는 “구제역 이후에 물은 꼭 끓여서 먹고 있다”라며 “공무원들이 자주 오가곤 하지만 근본적으로 상수도를 빨리 설치해 주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염모(69.여)씨는 “구제역 이후 냄새가 나는 듯해서 걱정이 많다”라며 “늙은 우리들보다 앞으로 이곳에서 살아가야 할 젊은 사람들이 걱정”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방역당국의 철통같은 대책에도 온종일 내린 비로 질퍽한 땅을 이룬 매몰지는 앞으로 한꺼번에 많은 폭우가 내릴 경우 언제든지 쓸려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은 불안감마저 씻어가지는 못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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