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미호 선장 “피랍 124일 매순간이 지옥”

금미호 선장 “피랍 124일 매순간이 지옥”

입력 2011-02-11 00:00
수정 2011-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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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됐다 4개월만에 풀려난 금미305호의 선장 김대근(54) 씨는 피랍 기간인 124일 동안 생명에 위협을 느끼지 않았던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며 치를 떨었다.

김 선장은 10일 연합뉴스와의 위성전화 인터뷰를 통해 피랍 당시 상황과 참혹했던 피랍 생활상, 그리고 현재 건강 상태 등을 상세히 전했다.

김 선장은 지난해 10월 9일 해적에 납치됐던 당시 상황과 관련, “평소와 다름 없이 조업 중이었는데 멀리서 해적들을 태운 보트가 빠른 속도로 접근하는 걸 발견했다”며 “어구를 걷어올리고 도망가려 했지만 불과 5분만에 해적들에게 납치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그는 “해적들이 AK소총으로 위협사격을 하는 바람에 조타실 유리창이 박살났다”며 “맨발로 조업 중인 선원들은 유리창 파편을 밟아 피가 흘렀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김 선장은 “배를 장악한 해적들은 신발, 속옷, 심지어는 화장실 휴지까지 싸그리 빼앗아갔다”며 “각 선원에게 러닝셔츠 1개와 팬티 2장 외에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빼앗아갔다”고 밝혔다.

그는 “가장 불안했던 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이었다며 “실탄이 장전된 총을 겨누며 위협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해 오발사고라도 나면 그냥 죽는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금미호는 피랍 기간에 해적들의 추가 해적질에 모선으로 악용되기도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김 선장은 “해적 보트로는 먼바다까지 나가기 어렵기 때문에 금미호에 해적 보트 2척을 싣고 해적질에 동원됐다”며 “해적들은 금미호를 이용, 4차례 나가 2번은 실패했지만 LPG 운반선 1척과 유조선 1척 등 2척을 추가로 납치했다”고 밝혔다.

그는 “나도 해적에 잡혀 지옥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 마당에 다른 무고한 선박들을 납치하는데 조종키를 잡는다는 건 정말 죽기보다 괴로운 일이었다”며 “하지만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죽이겠다는 위협에 어쩔 수 없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 선장은 석방금을 주지 않고도 풀려날 수 있었던 배경과 관련해서는 “피랍생활이 길어지면서 나중에는 아예 죽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며 “그래서 ‘회사 사정이 어렵기 때문에 나를 죽이더라도 정말 돈을 받지 못할 것’이라며 호소했더니 해적들이 결국 포기한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해적에게 풀려난 순간 기쁨 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심신이 지쳐 있었다”며 “해적들이 떠나는데 그쪽을 쳐다보기도 싫었다. 해적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보다도 못한 악질이다.”라고 분개했다.

한국인 선원 2명을 비롯, 선원 43명을 태운 금미호는 이날 오전 공해상에서 유럽연합(EU) 함대 소속 군함과 조우한 뒤 유류와 의약품을 공급받고 케냐 몸바사항으로 이동 중이다.

김 선장은 “나는 당뇨병 때문에, 기관장은 말라리아 때문에 고생하고 또 피부병에 시달렸지만 EU군함으로부터 받은 연고를 바르고 약을 먹어 지금은 좀 나아진 상태”라며 “지금 속도라면 14일께 몸바사항에 입항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피랍 기간에 “해적과의 협상은 없다”는 원칙을 고수한 정부에 대해서는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김 선장은 “젊은 시절 국방 의무를 다하고 지금은 외국에서 달러를 벌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살아왔다”며 “하지만 정부는 자국민의 생사가 안중에도 없는지 금미호 석방을 위해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그는 “개인은 해적세력에 대항할 힘이 없다”며 “국가가 위험에 빠진 국민을 나몰라라 하는 건 부모가 자식을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김 선장은 그러나 청해부대 최영함에 대해서는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해적에게 풀려난 뒤 청해부대와 연락이 닿았는데 거의 10분 간격으로 금미호의 위치를 확인하며 선원들의 안위를 걱정해줬다”며 “나중에 함장님과 대원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꼭 드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 선장은 마지막으로 “국민 여러분들이 염려해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선원 모두가 무사하게 풀려날 수 있었다”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나이로비.두바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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