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죄가 있다면…” 누명벗은 조봉암 선생

“내게 죄가 있다면…” 누명벗은 조봉암 선생

입력 2011-01-20 00:00
수정 2011-01-20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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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 조봉암 선생은 1898년 인천시 강화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YMCA 중학부에 수학하던 1919년 3·1운동에 참가했다가 첫 옥살이를 하면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일본 동경에서 유학하던 중 유학생들이 조직한 사회주의 비밀결사단체에 가입한 것을 계기로 사회주의 노선에 근거해 독립운동을 펼쳤으며 1920년대 조선공산당과 중국공산당에 참여했고 1932년 일본 경찰에 체포돼 7년간 복역했다.

 해방 후 건국준비위원회에서 활동했으며 1946년 박헌영 계열과 노선 문제로 갈등을 빚다가 중도통합노선을 주장하며 공산주의와 결별하고 미군정의 좌·우파합작을 지지하며 협력했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으로 당선돼 초대 농림부장관을 거쳐 국회부의장 자리까지 올랐다.1952년과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에 맞서 80여만표와 200여만표를 얻는 등 대중적인 지지를 넓혀가다 1956년 11월 혁신계 인사들과 함께 진보당을 창당했다.

 하지만 민의원 총선을 앞둔 1958년 1월 진보당 간부들과 함께 국가변란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체포됐고,그해 2∼3월 육군 특무대에서 조사를 받은 뒤 ‘북한의 지령과 자금을 조봉암에게 전달했다’는 육군첩보부대(HID) 공작요원의 진술 등을 토대로 간첩 혐의까지 추가됐다.

 조봉암 선생은 1심에서 징역 5년이 선고됐으나 2심과 3심에서 각각 사형을 선고받았고 재심 청구가 기각되면서 1959년 7월31일 형장의 이슬이 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2007년 9월 조봉암 선생 사건을 ‘위협적인 정적(政敵)을 제거하기 위한 이승만 정권의 비인도적,반인권적 인권유린이자 정치탄압’으로 규정하고 국가 차원의 사과와 피해 구제 및 명예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권고했다.

 이에 따라 조봉암 선생의 유족이 2008년 8월 대법원에 재심을 청구해 작년 10월 받아들여졌고 이날 열린 재심에서 무죄 선고로 사형 집행 반세기 만에 간첩 누명을 벗게 됐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많은 사람이 고루 잘 살 수 있는 정치운동을 한 것밖에 없다.나는 이 박사와 싸우다 졌으니 승자로부터 패자가 이렇게 죽음을 당하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다만 내 죽음이 헛되지 않고 이 나라의 민주발전에 도움이 되기 바랄 뿐이다.”조봉암 선생이 남긴 유언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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