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떨메’ ‘꼰대’ ‘사바사바’…세월 따라 사라지는 말들

‘옥떨메’ ‘꼰대’ ‘사바사바’…세월 따라 사라지는 말들

입력 2010-10-14 00:00
수정 2010-10-14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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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사바’, ‘향토장학금’, ‘바지씨’, ‘솥뚜껑 운전수’, ‘꼰녀’, ‘씽’...

한때는 널리 쓰였지만, 지금은 사용하는 이들이 거의 없는 어휘들이다.

어휘는 사회상을 예민하게 반영해 쉴 새 없이 생성되고 또 소멸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해방 후 사회적, 정치적 격변기를 거치면서 새로운 어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들 어휘는 기발한 표현과 해학성으로 전국적으로 유행하기도 했지만, 일부는 세대를 거치며 서서히 사라지는 운명을 맞았다.

●유행하다 사라진 단어들

사회상을 보여주는 단어 중에는 ‘공갈’, ‘군발이’, ‘치맛바람’, ‘물갈이’, ‘재벌’, ‘빽’처럼 긴 생명을 유지하며 일상 언어로 고정되기도 했지만, 서서히 잊힌 단어도 많다.

고급물건의 대명사였던 ‘일제(日製)’나 ‘미제(美製)’, 1960년대 도시화의 바람 속에 서울로 올라와 동생들의 학비를 벌었던 ‘공돌이’와 ‘공순이’, 부잣집에 숙식하며 살림을 돕던 여성을 지칭한 ‘식모’, ‘솥뚜껑 운전수’, ‘미숙(米熟)이’, ‘밥모’ 등이 그렇다.

1960년대 재건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자 나온 ‘재건데이트’(돈이 들지 않는 데이트), 1980년 과외금지조치 이후 생긴 ‘몰래바이트’(비밀과외), 권력층이 형성되고 사회 불신이 심화하면서 나온 ‘국물’(뇌물), ‘사바사바’(뒷거래), ‘모리배’(수단을 안 가리고 이익을 꾀하는 사람) 등도 지금은 없어진 단어다.

복잡한 정치사를 반영한 어휘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유당 정권이 부정선거를 하자 ‘피아노표’(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표까지 한꺼번에 투표하는 것), ‘올빼미표’(불을 끄고 개표하는 것)라는 단어가 대유행 하다 부정선거가 없어지면서 자취를 감췄다.

‘땃벌떼’(자유당 시절 동원된 정치깡패), ‘사꾸라’(상대방 첩자), ‘돈국구’(정치 헌금을 내고 전국구 국회의원이 된 일을 비꼬는 말)라는 말도 사람들의 입에 널리 오르내렸다.

인물을 지칭하는 속어도 유행하다 사라졌다.

못난 얼굴을 가진 사람을 가리킨 ‘후지카’, ‘몰카’, ‘졸도카’, ‘호박’, 박호순’(거꾸로 읽으면 순호박), ‘옥떨메’(옥상에서 떨어진 메주)가 대표적이다.

또 ‘건빵’(눈이 작은 사람), ‘무허가 건축’(여드름 난 얼굴), ‘핫바지’(시골 사람 또는 무식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짱아찌’(인색한 사람) 등도 그렇다.

학생과 젊은이들의 익살이 발달시킨 속어도 대중적으로 쓰이다 힘을 잃었다.

‘향토장학금’(부모가 보내주는 학비), ‘11호 자가용’(보행), ‘오리지날’(결혼할 마음이 있는 대상), ‘자가용’(여자 파트너), ‘리바이벌’(헤어진 여인과 다시 만남), ‘영구취직’(결혼) ‘초팅’(야외미팅), ‘고팅’(고고춤을 추는 미팅), ‘부팅’(부루스를 추는 미팅), ‘야코죽이기’(기죽이기) 등이 그런 예다.

‘꼰장’(교장), ‘꼰대’(부모), ‘꼰닥터’(위생 교사), ‘꼰녀’(여교사) 같은 단어도 남학생들 사이에 널리 쓰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삐삐’, ‘시티폰’, ‘피시에스폰’, ‘회수권’, ‘토큰’ 등의 단어는 지칭하던 대상이 없어져 어휘가 생명을 잃은 경우다.

‘라성’(LA), ‘나사’(양복점), ‘사장’(사진관)이나 ‘애급’(이집트), ‘비율빈’(필리핀), 불란서(프랑스), 화란(네덜란드), 아라사(이탈리아), 희랍(그리스), 가나다(캐나다) 등 일본에서 썼던 한자를 그대로 빌렸던 나라 이름들도 우리말 순화를 통해 다른 단어로 바뀌었다.

● 참신성이나 정확성 없으면 소멸

그렇다면, 같은 시기에 생긴 어휘라도 어떤 것은 금세 소멸하고 어떤 것은 일상어로 고정되어 오래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에 따르면 어휘 소멸의 명확한 조건은 없고, 다만 신기한 표현이라 눈에 띄고 우리말 구조와 잘 맞아 발음이 쉽고 의미가 명쾌하면 어휘의 생명도 길어진다고 보는 게 대체적이다.

‘불고기’와 ‘구두닦이’ 같은 단어들은 누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모르지만 말하기 쉽고 뜻도 명확해 생명력을 얻었고, 국어순화운동의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보급했던 ‘건널목’, ‘나들목’ 같은 단어도 그렇게 살아남았다.

하지만 정부가 보급하고 교과서에도 실렸던 ‘연보라살’(자외선), ‘연빨강살’(적외선), ‘세모꼴’(삼각형), ‘네모꼴’(사각형) 등의 단어는 오래가지 못해 대중의 외면을 받았다.

시대를 풍자하고 해학성이 있어 널리 사랑받았던 단어들도 경박한 느낌이 들거나 발음이 익숙지 않고 출처가 어딘지 헷갈릴 때는 점점 사라졌다.

‘땃벌떼’, ‘사바사바’, ‘브리핑 차트 행정’(군사정권 시절 공무원들이 군인처럼 차트를 넘겨가면서 설명하는 것 표현한 말), ‘UN공주’(성매매 여성), ‘레지’(다방종업원), ‘솔개차’(케이블카) 등이 그런 예다.

홍윤표 전 연세대 국문과 교수는 “유행하다 사라진 어휘들을 살펴보면 어둡고 혼란한 시대에 하고 싶었던 말들을 토로하려는 민심의 움직임과 언중의 언어구사 능력을 함께 확인할 수 있다”며 “전국적으로 유행하지 않고 학생층이나 불량배 집단, 상인들 사이에서만 생성되고 소멸한 어휘도 수없이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20세기 이후 생성된 어휘 중 특정 어휘가 현재 쓰이느냐 그렇지 않으냐를 구별하는 작업은 상당히 어렵다.

젊은이들은 모르지만, 노인 중 일부가 쓰는 일도 있고, 말할 때는 쓰지 않지만, 글에서는 드물게 등장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부나 학계에서도 신어(新語)는 수집해 자료로 남기거나 사전에 등재하지만 쓰지 않는 어휘를 정리하는 작업은 하지 않고 있다.

다만, 사전에 등재된 경우 더는 그 어휘가 일상적으로 사용되지 않더라도 표제어에서 삭제하지는 않는다.

한번 사전에 오른 말을 그것을 근거로 사람들이 이용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이운영 국립국어원 연구관은 “학습사전 등 특수사전이 아니라면 대사전에 올랐던 말은 맞춤법이 틀리지 않는 한 삭제되지 않는다”며 “죽었다고 생각되는 어휘도 대중매체나 작가 등에 의해 다시 살아나 널리 쓰이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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