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해결없이 해방이란 말 못해”

“위안부 해결없이 해방이란 말 못해”

입력 2010-03-01 00:00
수정 2010-03-01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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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숨이 거칠어졌다. 눈물이 촉촉이 맺힌 두 눈이 살짝 감기기 시작했다. 대화를 나눈 지 채 40분이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길원옥(83) 할머니는 꼿꼿하던 등을 소파에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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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을 이틀 앞둔 지난 27일, 서울 충정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쉼터 ‘우리집’에서 길 할머니를 만났다.

“올해가 한일병합 100년이라지? 나라에서는 해방된 지 65년 됐다고 기념하는 모양이지만,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진정한 해방이라고 할 수 있나. 우린 아직도 해방되지 않았어.”

가늘게 이어가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할머니의 답답증은 3·1절, 광복절만 되면 심해졌다. 정부에서 ‘과거는 다 잊고 새로 잘해 보자.’는 말을 할 때면 억장이 무너져 내린다. 길 할머니는 “과거를 왜 없애. 인정할 건 하고 사과할 건 해야 앞으로 서로에게 좋은 것 아냐.”라면서 “자기 가족, 지인 중에 위안부 피해자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이럴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할머니가 바라는 것은 하나다.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 그것이다. “죽을 날이 머지않았는데, 뭘 더 바라겠어. 우리는 ‘배상’하라는 말은 안 해. 계속 할머니들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으면 ‘이제 내 차례다.’싶어 불안하지.” 지난 10일 전북 익산에서 치료를 받던 이점례(89)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우리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86명으로 줄었다.

수요집회가 처음에는 “망신스러웠다.”고 했다. 텔레비전을 보는데 수요집회 장면이 나왔다. ‘나도 저기 나간다면….’ 잠깐 생각을 했지만 동네 망신스러워서 상상도 못했다. 수요집회를 알게 된 후로 매일 눈물이 났다. 견딜 수 없었다. 92년부터 시작된 수요집회에 길 할머니는 2002년부터 참여했다.

길 할머니는 거의 매일 추운 겨울, 더운 여름 가리지 않고 수요집회를 지킨다. ‘우리 후손이 당하면 안 된다, 알려야 한다’는 심경에서다. 할머니는 “일자무식에다 학교 근처에 가본 적도 없지만 강연에 나가서 증언할 때면 스스로 놀란다.”면서 “말하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워 우황청심환을 2~3개씩 먹지만 내 할 일이 그것이다.”고 말했다.

쉼터 친구인 이순덕(93) 할머니가 몸이 안 좋다며 병원에 갔다. “일주일에도 몇 번 있는 일이야. 둘 다 안 아픈 곳이 없어. 나도 당뇨가 있는데 오늘은 당 수치가 떨어지지 않아서 괴롭네.”

몸 가누기를 힘들어하는 길 할머니는 “팔십 넘도록 사람답게 한 번 못 살아봤는데, 죽기 전에 일본이 진심으로 사과하면 눈을 편하게 감을 수 있을 것 같다.”며 마지막 소원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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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2010-03-01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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