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구속’ 위축된 방송 연예가
최근 연예인을 출연시키는 대가로 돈을 받은 고재형 MBC 책임프로듀서(CP)와 이용우 전 KBS CP가 구속 기소되자 방송연예가는 사뭇 썰렁한 분위기다. 신보를 발표한 가수들과 연기자들의 매니저로 문전성시를 이루던 방송사 예능국에는 관련자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한 그룹의 매니저는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두 달여 전부터 방송사에 매니저들의 모습이 눈에 띄게 줄었다.”면서 “특히 유명 연예인을 보유한 기획사의 매니저들은 오해의 소지를 만들지 않기 위해 아예 PD들과의 접촉을 끊고 있다.”고 말했다.
잊을 만하면 한번씩 터지는 연예기획사의 방송사 PD들에 대한 금품·향응 접대의 검은 고리는 왜 끊어지지 않는 것일까. 관계자들은 프로그램 제작자와 출연자간의 ‘공생관계’에서 원인을 찾는다. 일부 대형기획사와 간부급 PD들의 주기적인 만남을 통해 형성된 이른바 ‘라인 문화’의 병폐라는 것이다. 방송사 입장에선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톱스타를 보유한 대형기획사를 필요로 하고, 신인 가수나 연기자를 보유한 기획사들은 PD의 역할이 필수적인 만큼 이들의 관계는 지속적으로 유지된다. 올해로 경력 12년차인 한 연예기획사의 실장은 “선배 매니저들의 경우 CD에 수표 10장을 접어넣어 돌리거나 007가방에 현찰로 용돈을 제공하는 등 고전적인 방법은 물론 방송사 엘리베이터에서 PD들에게 돈을 찔러주는 것을 친분의 척도로 자랑삼아 말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같은 지상파 PD들에 대한 금품공세가 외주제작사들이 난립한 3∼4년 전부터 급격히 줄었다는 지적도 있다. 한 여성연기자의 매니저는 “과거에는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위해 방송사 섭외작가에게 명품을 사주던 시절도 있었지만, 외주제작사의 프로그램 제작빈도가 높아지면서 자회사 소속 연예인을 쓰는 경우가 늘어 지상파 방송사에 대한 의존도가 많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방송 연예가가 보다 투명해져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모 음반기획사 대표는 “현재 거론되는 사례는 상위 20개 대형 연예기획사에 국한된 것”이라면서 “일부 방송사 PD와 대형기획사들과의 고질적인 유착관계가 척결돼 콘텐츠만으로 승부를 걸 수 있는 풍토가 정착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구속된 고 CP와 이 전 CP 외에도 10여명의 PD들이 더 검찰소환을 통보받은 것으로 알려지자 방송가 예능국은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며 뒤숭숭한 분위기다. 예능국이 PD·연예기획사간 검은 거래의 온상으로 지목되는 것에 대해 내부 갈등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부장급 이상 간부로 구성된 MBC 선임자 노조는 최근 성명을 내고 “지상파 경영을 위협하는 고질적인 연예비리를 뿌리 뽑아라.”며 집단 각성을 촉구했다.
MBC 선임자 노조 관계자는 “동료로서 가슴 아프지만, 살신성인의 자세로 경각심을 일깨워주고자 했다.”고 취지를 밝혔다.
그러나 젊은 PD들을 중심으로 대책회의가 열리는 등 반발도 만만치 않다.MBC 예능국 최모 PD는 최근 사원들에게 돌린 메일을 통해 “가뜩이나 함께 일하던 선배가 부당한 언론플레이로 매질당하고 과도하게 구속조치까지 당했는데,(선임자 노조가)PD 후배들을 두 번 죽이고 있다.”며 “(최근의 압력은)드라마, 예능, 시사교양 등 회사 전체 PD동료들에게 드리운 칼날”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MBC 간부급 관계자는 “과거를 꺼내어 들추는 게 아니라, 바로 현재진행형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라며 “PD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예능 프로그램 위축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PD의 거취가 프로그램 개편 문제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MBC 관계자는 “구속된 고 CP를 지난달 29일 일단 대기발령 조치했으며, 아직 징계 결정은 나지 않았다.”면서 “다른 CP들이 고 CP의 프로그램을 함께 맡는 체제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주 강아연기자 erin@seoul.co.kr
2008-09-03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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