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 트렁크(반바지)에 태극기를 달고 뛰는 흑인 복서의 사진이 지난 15일 국내 한 포털 사이트에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그가 이런 트렁크를 입고 경기에 나선 사연을 둘러싼 궁금증이 적지 않았던 것.
사진의 주인공은 세계권투평의회(WBC) 웰터급 챔피언인 셰인 모슬리(36). 그는 지난 11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 베이 리조트 앤드 카지노에서 열린 타이틀매치에서 루이스 콜라조(26)를 꺾고 챔피언 벨트를 찼다. 주류 언론에선 거의 이 경기를 다루지 않았는데 한 누리꾼이 뒤늦게 이를 올려놓으면서 새삼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
모슬리의 별명은 ‘슈거’. 전설적인 복서 슈거 레이 레너드의 이름을 본떴다. 그가 태극기를 트렁크에 단 채 경기에 나선 이유로는 해석이 엇갈린다. 하나는 아일랜드계 공인회계사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혼혈인 아내 진(30)을 사랑해 아내의 조국에 각별한 애정을 표시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또 하나는 그녀가 필리핀계로 잘못 알려진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날 모슬리는 10살 아래인 콜라조를 시종일관 몰아붙여 11라운드에 다운을 빼앗은 끝에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뒀다. 모슬리의 다음 상대는 5월6일 라스베이거스 MGM그랜드가든에서 열리는 WBC 주니어미들급 타이틀매치 오스카 데 라 호야(34)와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30·이상 미국)전의 승자.
모슬리는 6체급 석권이라는 전무후무한 전설을 갖고 있는 호야를 두 차례나 꺾은 천적이다. 세 번째 맞대결이 성사될 경우 빅매치 기근에 시달리는 복싱계를 흥분시킬 전망이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2007-02-17 1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