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변호사는 ‘변신중’

인권변호사는 ‘변신중’

홍희경 기자
입력 2006-12-20 00:00
수정 2006-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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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아침 8시, 법무법인 ‘공감’ 소속 황필규(38) 변호사는 오후에 있을 ‘난민법 재개정을 위한 토론회’를 앞두고 자료를 한번 더 꼼꼼히 챙겼다. 만반의 준비를 위해서였다. 순간, 지난 2월 서울행정법원에서 자신이 대리한 미얀마인 8명이 법무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난민지위 불허처분을 취소하라.”는 승소 판결을 받아낸 것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항소심 소장을 작성한 지도 꽤 됐으니,2심 판결이 어떻게 날지 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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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도 잠시, 국회 공청회 활동을 하면서 안면을 터놓았던 사람들을 오후 토론회에서 다시 만난다는 생각이 미치자 웃음이 절로 난다. 그날 토론회는 예상대로 길어졌고, 저녁 늦게 집에 도착했다. 곧바로 난민법 재개정안 정리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새벽 1시 전에 자야만 내일 예정된 난민단체 법률상담을 할 수 있을 텐데”라며 시간과의 싸움을 벌여야 했다.

한때 인권변호사들에게 따라붙었던 ‘시국사건 전담 변호사’란 별명이 이제는 옛말이 돼가고 있다. 시국사건에서 노동·환경·복지·장애인 등 공익성이 강한 분야로 확대하면서 이들의 역할과 위상도 날로 높아가고 있다.

재판부 왼편 피고인 대리석에 앉아 법정이 떠나갈 듯 한 기백으로 변론을 하고 끝내 패소 판결을 감내해야 했던 선배 인권변호사들의 모습은 후배들에겐 낯선 풍경이 됐다. 젊은 후배들은 이제 재판부의 왼쪽이 아닌 오른쪽, 즉 재판을 청구하는 원고 자리에 앉는 예가 많다. 노동사건만 맡는 민주노총 법률원도 형사사건을 포함, 피고를 대리하는 사건은 3분의 2정도에 불과하다.

항상 ‘지는’ 변호사라는 꼬리표도 이들에게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공감의 염형국 변호사는 “사건의 80∼90%는 공감측에 일부 승소라도 내려진다.”고 자신했다. 민주노총 법률원은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대법원 판례를 깨고 우리 법률원 의뢰인에게 유리한 하급심 판결도 종종 나온다.”고 귀띔했다.

반면 시국사건 변론은 이들의 업무에서 아주 적은 비중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변신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됐다. 더구나 시대적 흐름이 노동 환경 등 공익소송분야의 수요가 더 늘고 있다는 점도 변신을 서두르게 한 배경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민변 사무차장 송호창 변호사는 “민변 전체 활동에서 시국사건 관련 송무는 10%에도 못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민변은 간첩 사건인 일심회 사건 변호인단을 구성할 때 민변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고, 회원 변호사들 가운데 자원자를 모으는 방식을 택했다. 송 변호사는 “소속 변호사들의 스펙트럼이 다양해, 앞으로 민변 이름으로 시국사건 대리를 하는 일은 보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권변호사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역할에 대해 “국가 등으로부터 침해당한 개인의 ‘자유권’을 지키는 입장에서 한 단계 높은 차원의 권리인 ‘사회권’을 요구하고 지키는 쪽으로 바뀌었다.”고 평가한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인권변호사들의 관심은 소수자 문제로 바뀌고 있다. 민변은 미군과 통일위원회 외에 여성·복지, 환경, 노동, 언론, 사법, 과거사청산, 민생경제, 공익소송 위원회 등을 두고 있다. 올해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와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활동에 주력했다. 공감은 장애인과 여성, 노숙인, 이주여성·노동자, 난민 관련 활동을 한다.

인권변호사 모임인 민변의 회원수는 현재 546명이다. 여기다 지방의 법무법인 등에 소속된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700∼800여명에 이른다. 민주노총 법률원과 공감 등 전일제로 공익변론 활동을 하는 변호사들은 대부분 민변 소속이다. 이 가운데 10% 정도인 50여명이 시민단체에 소속되거나 연계해 활동하고 있다.

이밖에 민주노동당과 연계해 서민파산 등에 대해 법률상담을 해주는 변호사단도 시대에 적응한 인권변호사로서 활동중이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2006-12-2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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