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北·中·日 ‘구애’파도 앞에 선 한국
대한민국을 향해 구애(求愛)의 파도가 사방에서 밀려오고 있다. 정치적·경제적으로 우리나라의 위상이 올라간 데다 국제정세의 지각변동이 겹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이에 우리 국방부는 4일 “계획되거나 논의된 바가 전혀 없다.”며 미국발 추파를 방파(防波)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미국의 의도는 BMD 추진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한국과 나눠 지는 동시에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구도 재편을 견제하는 다목적 포석이라는 관측이다.
북쪽 해류도 만만치 않다. 경제난이 벼랑에 이른 북한은 최후의 동아줄로 한국에 매달리고 있다. 북한은 자존심을 팽개쳐 가면서까지 금강산·개성관광을 다시 하자고 촉구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추진도 북측의 적극적인 제의에서 비롯됐다. 우리 정부는 이런 ‘애정공세’에 속도조절로 대처하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경제개방으로 돈맛을 들인 중국이 대북지원에 인색하고, 북한은 ‘중국이 찔끔찔끔 준다.’며 고마워하지도 않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동아시아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중국과 일본도 한국에 앞다퉈 구애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제안한 한·중·일 협력 상설사무국을 서울에 설치하기로 3국이 석 달 만에 무리 없이 합의한 것은 이런 기류를 반영한다.
그렇다면 이 중구난방의 파도는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강대국끼리의 견제에서 자유로운 위치를 충분히 활용해 주도적인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선 미국을 배제하지 않는 지역협의체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북태평양기구’ 같은 것을 만들면 한·중·일과 함께 미국·러시아를 포괄할 수 있다.
이참에 아예 국가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구(舊)패러다임을 벗어나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영토와 인구, 군사력 같은 경성국력에 매몰되지 말고 기후변화, 재난, 질병과 같은 범(汎)국가적 어젠다를 매개로 새 질서를 창출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른바 ‘비전통안보’(non-traditional security) 개념이다.
고려대 국제학부 정서용 교수는 “한국은 하드웨어적 규모로 경쟁하면 강대국에 비해 불리하다.”면서 “유엔, 비정부기구(NGO) 등이 두루 참여하는 국제협력의 틀을 만들면 벨기에 브뤼셀은 상대가 되지 않을 만큼의 위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환경 등 비(非)정치적 의제와 관련한 유엔 기구를 만들어 북한을 참여시키면, 한국의 경제적 부담도 덜고 북한을 제도권 내로 편입시킬 수 있다.”고 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2010-02-05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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