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2월 8일 긴급조치 해제에 따라 연금에서 풀려난 김대중 전대통령이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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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사는 생전에 왜 DJ와 결혼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유쾌하게 답했다. “잘생겼잖아요.”
두 사람의 결혼은 순탄하지 않았다. 이화여전, 서울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 여성과 첫 번째 부인과 사별한 뒤 초등학생 두 아들이 딸린 빈털터리 야당 정치인의 사랑이었다. 누가 봐도 한쪽이 한참 기우는 만남이었다.
지난 2015년 한겨레가 연재한 ‘이희호 평전-고난의 길, 신념의 길’에 따르면 이 여사와 DJ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부산에서 처음 만났다. 이 여사는 1·4 후퇴 때 서울 피란민을 배에 태워 돕는 일을 했는데 그 배의 주인이 당시 해운회사를 운영하던 DJ였다.
DJ는 이 여사를 “이지적인 눈매를 지닌 활달한 여성”으로, 이 여사는 “눈이 크고 핸섬한(잘생긴) 멋쟁이이자 책을 많이 읽고 아는 것이 참 많은” 남자로 기억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고 이희호 여사의 결혼식 모습
1961년 5월 10일 두 사람은 이 여사의 외삼촌댁인 서울 종로구 체부동의 한옥집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 여사는 40세로 초혼이었고 38세의 김 전 대통령은 재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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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이 여사는 미국 스칼렛 대학원으로 유학을 다녀왔고, DJ는 첫 부인 차용애씨와 사별했다. 쿠데타로 군인들이 국회를 장악하면서 야당 대변인이라는 직업까지 잃었다.
두 사람은 당시 YWCA연합회 총무로 있던 이 여사의 사무실 근처인 명동에서 자주 만났다. 보통 연애완 달랐다. 만나서 주로 정치상황을 놓고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생각이 잘 통했던 두 사람은 서로를 깊이 신뢰하고 의지했다.
회고록은 당시 두 사람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했다.
“두 사람의 감정은 마른 장작의 불처럼 빠르게 타오른 것이 아니라 수묵화의 먹처럼 마음의 한지에 천천히 번졌다.”
젊은 시절의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부인 이희호 여사
1922년 태어난 이희호 여사는 대표적 여성운동가로 활동하다 1962년 고 김 전 대통령과 결혼해 정치적 동지로서 격변의 현대사를 함께했다. 사진은 젊은 시절의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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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로서의 매력, 해박한 지식과 민주주의에 대한 투철한 신념, 관용이 넘치는 사람 됨됨이 등이다.
그러나 이 여사가 DJ와의 결혼을 결심한 결정적 이유는 “도와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한다.
민주주의와 조국통일이라는 DJ의 큰 꿈이 꺾이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다는 것이다.
차 마시며 담소 나누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1993년 8월 12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자택에서 이희호 여사와 담소를 나누는 모습. 2019.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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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집은 DJ의 홀어머니와 아픈 여동생, 두 아들이 살고 있는 서대문구 전셋집이었다.
그렇게 이 여사는 ‘인동초’ DJ의 가시밭길에 든든한 동반자가 되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