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주인, 왕 아닌 나”… 5000년 역사 첫 개인 주권시대 열어

“국가의 주인, 왕 아닌 나”… 5000년 역사 첫 개인 주권시대 열어

류지영 기자
류지영 기자
입력 2019-04-11 23:16
수정 2019-04-12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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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가 미친 영향과 과제

세계 최초로 헌법에 ‘민주공화정’ 명기
세계 대공황 후 진보 색채… 파업권 도입
상하이 활동가 중심 파벌주의 반면교사로
민족·세계시민 사이 정체성 공존도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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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운동으로 표출된 민족국가와 국민주권국가 수립 욕구를 처음으로 구체화했고 국내외 여러 정부를 하나로 묶어 독립운동 대표체로 거듭났다. 이것만으로도 임정은 대한민국의 시원(始原)으로 정통성을 인정받기에 충분하다. 임정 수립 100주년을 맞은 11일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에 준 영향과 과제, 의미를 들여다봤다.

임정은 우리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명시한 동시에 새 나라가 대한제국(조선)을 계승하면서도 ‘국가의 주인은 왕이 아닌 인민’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간간이 이어지던 ‘복벽주의’(나라를 되찾아 왕을 다시 세우겠다는 주장) 움직임을 완전히 단절시켰다. 우리가 지금 민주주의국가에서 살게 된 것은 임정의 수립이 결정적이었다.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11일 “임정 설립과 이후 활동을 통해 우리나라는 전제군주제에서 민주공화정으로 정치 체제가 근본적으로 변화했다”고 소개했다.

1919년 4월 10일 중국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이동녕(1869~1940)과 이광수(1892~1950) 등은 우리 역사 최초의 의회인 임시의정원을 꾸리고 첫 번째 회의를 가졌다. 밤을 새워 토의하던 중 신석우(1894∼1953)가 “임정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고종 황제가 선포한 대한제국에서 ‘대한’을, 공화제 국가로 태어난 중화민국에서 ‘민국’을 가져왔다. 이에 여운형(1886~1947)이 “이 나라가 ‘대한’이라는 이름으로 망했는데 또다시 쓸 필요가 있느냐”고 묻자 신석우는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다시 흥해 보자”고 재치 있게 답했다. 의원 다수가 이에 공감해 국호가 정해졌다.

다음날인 11일 이들은 한국사 최초의 민주공화정 국가 건설을 공식화한 뒤 임시헌장(1차 헌법)을 반포했다. 새 헌법은 내용이 너무 간략해 선언적 수준에 그쳤다는 지적이 있지만 대한민국의 방향성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임정은 민주공화제와 대의제를 채택하고 평등권과 자유권, 참정권을 인민의 기본권으로 규정했다. ‘소유의 자유’를 명시해 자본주의 체제를 도입하고 생명형(사형)과 신체형(태형)을 폐지해 인도주의 원칙도 명시했다.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헌법에 ‘민주공화정’을 명기한 것은 임정이 세계 최초였다”고 설명했다.

세계 대공황(1929~1933)을 통해 제어되지 않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경험하고 1942년 조선민족혁명당 김원봉(1898~1958) 등이 임정에 가담하면서 임정은 민주공화정의 큰 틀을 유지하면서도 진보적 색채를 대거 가미했다.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파업권 등이 이때 도입됐다. 학계에서는 3·1운동으로 임정이 수립된 것을 두고 ‘5000년 역사의 최대 사건’으로 치켜세우기도 한다. 한반도에 민주공화정을 세우는 토대가 됐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임정은 우리에게 숙제도 남겼다. 1919년 9월 11일 임정은 여러 정치세력을 한데 모아 통합정부로 태어났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상하이 독립운동가들이 주도권을 쥐고자 다른 세력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해 갈등을 빚었다. 만약 이때 모든 세력을 끌어안아 완전체가 됐다면 대한민국의 역사는 지금과 달라졌을 수 있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부분이다.

우리가 TV에서 흔히 보는 상하이 임정 기념관은 ‘보경리 청사’로 1926~1932년에 썼던 곳이다. 아직 1919년 4월에 입주한 첫 번째 청사를 찾지 못했다. 김주용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교수는 “대한민국의 근원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이곳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여기에 김구의 혈통적 민족 개념에 대한 발전적 계승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민족주의에 내재된 권위주의와 인종주의까지 인정해서는 안 된다. ‘민족과 세계 시민 사이의 상반된 정체성을 어떻게 공존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새로운 100년으로 가는 대한민국의 과제”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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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2019-04-12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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