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정권, 5·18 유족 입 막으려 신민당 집중 사찰

전두환 정권, 5·18 유족 입 막으려 신민당 집중 사찰

강주리 기자
강주리 기자
입력 2017-10-29 09:34
수정 2017-10-29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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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사, 유족 만난 이기택 주시…안기부 압도하는 무소불위 권력 행사이철희 “정권 아킬레스건 감추려 정치화 경계”

전두환 정권 시절 국군 보안사령부가 5·18 민주화운동 유족들에 대한 분열공작의 하나로 당시 야당인 신한민주당(신민당) 주변을 집중 사찰한 사실이 확인됐다.

보안사는 유족들이 신민당 관계자들과 교류하면서 5·18 진상 규명을 정치 쟁점화하지 못하도록 광범위한 방해 작전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신민당은 1955년 창당된 민주당의 계보를 잇는 정통 야당으로, 현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이기도 하다.

29일 민주당 이철희 의원이 국방부에서 제출받은 보안사의 ‘정보 사업 계획’ 문건에 따르면, 보안사는 1985년 12대 총선을 전후해 신민당 관계자들을 뒷조사했다.

문건이 작성된 시기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한 사주를 받아 5·18을 일으켰다는 누명으로 징역 20년을 선고받고,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귀국해 신민당에 힘을 실어준 즈음이었다.

보안사는 이 문건에서 “12대 총선 분위기가 고조됨과 동시에 전남 ○○ 지역구 신민당 입후보자 등이 광주사태를 선거 쟁점으로 부각하면서 유족들을 상징적 존재로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일부 유족들이 신민당 지원을 위해 12대 국선(총선)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면서부터 극렬 측 유족들이 세력 확산에 부심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보안사는 유족들의 구심점인 계 모임의 계주가 신민당에서 선거 사무장으로, 재무 담당이 여성분과 부녀부장으로, 한 회원이 광주시 송암동·효덕동 조직책으로 각각 활동한 내용을 파악했다.

또 유족 30세대 35명이 매달 두 차례 ‘공원묘지’(5·18 민주묘지) 등에서 모임을 하고, 정부 차원의 정당한 보상과 기관원의 감시 중단 등을 요구하고 있는 사실도 조사했다.

신민당이 창당 28일 만에 치른 총선에서 지역구 50석과 전국구 17석의 의석을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킨 후에도 보안사의 집요한 사찰은 계속됐다.

특히 보안사는 유족 17명이 총선 직후인 1985년 3월 14일 당시 신기하 의원의 도움을 받아 ‘KT가(家)’를 집단 방문한 사실을 파악해 문건에 남겼다. ‘KT’는 신민당 이기택 부총재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보안사는 “(유족들은) 자신들의 요구사항이 국회에서 거론되도록 배후에서 압력(을 가하고 있으며), 청와대와 국회 방문을 위해 상경을 시도(하려 한다)”고 보고했다.

이처럼 국민 지지를 받는 야당을 노골적으로 사찰할 수 있었던 것은 전두환 정권 시절의 보안사가 가장 강력한 국가기관으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이 의원이 공개한 1981년 5월 28일 자 ‘광주사태 1주년 대비 예방정보활동 결과’ 문건을 보면, 보안사는 전라남도가 1천만 원의 예산을 들여 5·18 사망자 묘비 건립을 지원하는 방안을 철회시켰다.

이 방안은 중앙정보부 후신이자 국가정보원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가 제안한 것이었지만, 보안사는 ‘명분상 문제점’을 지적하며 이를 손쉽게 무산시키고 유족의 자비 건립을 결정했다.

이 의원은 “전두환 정권이 ‘5·18의 정치화’를 극도로 경계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5·18이 정권을 넘어뜨릴 최대의 아킬레스건임을 알고 있었다는 의미”라며 “오월 광주의 참상을 어떻게든 감춰보려 했던 그들의 헛된 시도는 87년 민주화로 끝내 좌절됐다”고 말했다.

한편, 1985년 11월 보안사의 5·18 유족 분열공작 문건을 결재한 사령관은 하나회 핵심으로 알려진 이종구 씨였다. 노태우 정권에서 육군 참모총장과 국방부 장관을 지낸 이 씨는 최근까지 전시작전권 조기 전환 반대 여론을 주도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 씨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그때 5·18 유족을 대상으로 그런 것을 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며 “당시 그런 계획이 없었고, 보고받지도 못했고, 전혀 기억나지도 않는다”고 부인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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