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선 후보단일화는…직선제후 14대 빼고 매번 시도

역대 대선 후보단일화는…직선제후 14대 빼고 매번 시도

입력 2017-04-25 16:09
수정 2017-04-25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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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DJP연합,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5·9 ‘장미대선’의 막판 변수로 후보 단일화 논의가 재점화하면서 역대 대선 단일화 사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5일 새벽 바른정당 의원총회에서 ‘비문(비문재인) 후보 단일화’를 제안하기로 결정하고,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보수 진영 4명의 단일화를 공론화한 것이 그 단초다.

이런 움직임은 야권의 전유물처럼 인식됐던 역대 후보 단일화와는 정반대 양상이다. 주로 보수 정당이 주축이 된 이번 경우와 달리 과거 대선에서는 야권 후보를 중심으로 단일화 논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6차례의 대선에서 1992년 14대 대선을 제외하면 민주당 계열 정당을 중심으로 후보 단일화 시도가 끊이지 않았다.

첫 시도는 87년 13대 대선이었다. 군사독재를 마감하고 민주정권 탄생을 바라는 국민적 염원 속에 야권의 유력주자인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단일화 협상 테이블을 차린 것이다.

결국 두 후보는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따로따로 출마해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승리를 헌납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당시 YS와 DJ가 각각 28.0%, 27.0%를 나눠 가진 덕분에 노 전 대통령은 역대 최소치인 36.6%의 득표율로 대권을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후보 단일화가 결실을 이룬 것은 10년 뒤인 1997년 15대 대선이다.

당시 새정치국민회의를 이끌던 DJ와 자유민주연합 김종필(JP) 총재가 97년 11월 3일 대선후보 단일화 합의문에 서명해 ‘DJP 연합’을 이룬 것이다.

호남과 충청, 진보와 보수가 손을 잡은 DJP 연합에 힘입어 DJ는 대통령에 당선됐고, JP는 국무총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 직후인 2002년 16대 대선에서의 단일화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우여곡절 끝에 ‘해피엔딩’으로 귀결됐다.

민주당 후보로 확정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방선거 참패와 DJ 아들 비리 등의 악재로 지지율 추락을 면치 못하는 사이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가 한일월드컵 성공 개최를 계기로 주가를 끌어올리자 두 사람 간 단일화 논의가 시작됐다.

단일화 방식을 놓고 팽팽한 신경전 끝에 노 후보의 여론조사 방식 수용으로 막판 극적인 합의를 이뤘고, 2002년 11월 24일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예상을 뒤엎고 노 후보가 승리를 거뒀다.

노 후보는 대선 전날 밤 정 대표의 지지철회로 위기를 맞았으나, 그럼에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2007년 17대 대선에서는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 민주당 이인제 후보 사이에서 단일화 논의가 오갔으나 워낙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의 격차가 커 성사되지는 않았다.

직전 대선인 2012년 18대 대선은 야권이 후보를 단일화했음에도 패배한 첫 사례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단일화 논의 과정에서 갈등을 겪다가 11월 23일 안 후보가 전격 사퇴하는 형식으로 단일화에 성공했다.

그러나 과거의 단일화와는 달리 후보 간 합의가 아닌 한쪽의 포기로 이뤄진 당시의 단일화는 충분한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하고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역대 사례와 비교할 때 이번 ‘바른정당발(發)’ 단일화 제안은 2002년 ‘후단협’(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 사태를 연상케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승민 후보의 ‘독자 완주’ 의지에도 단일화를 끈질기게 요구한 바른정당의 내부 움직임이 2002년 10월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15%대로 주저앉자 당내 반노(반노무현)·비노(비노무현) 의원들을 위주로 정몽준 의원과의 단일화를 위한 후단협을 출범시켜 집단 탈당한 당시 사태와 닮았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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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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