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창조경제… 또 국민행복…” 노이로제 걸린 정부 산하기관들

“또 창조경제… 또 국민행복…” 노이로제 걸린 정부 산하기관들

입력 2013-03-20 00:00
수정 2013-03-20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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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출연연구소 토론회마다 원론적 창조경제·국민행복뿐

“창조경제의 대표적인 사례가 워킹화와 스크린골프라고요? 그럼 정부출연연구소는 도대체 뭘 연구해야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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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서울 중구 수하동 페럼타워.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주최한 ‘창조경제포럼’ 행사장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KISTEP은 당초 170명 규모로 행사를 준비했지만 4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다. 참석자는 대부분 출연연, 국책연구소 등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창조경제 전문가로 꼽히는 이민화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 등이 연사로 나섰지만 참석자들의 표정은 행사 내내 굳어 있었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마치 창조경제학 원론을 듣고 있는 느낌”이라며 “도통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정부 산하기관과 출연연구소, 국책 연구소들이 ‘창조경제’, ‘국민행복’ 노이로제를 호소하고 있다. 창조경제와 국민행복은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국정 기조다. 정부 예산으로 목표를 설정하고 결과를 내야 하는 산하기관 입장에서 국정 기조에 맞춰 연구와 정책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당연한 일이자 생존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보고서나 연구과제 등을 일방적으로 틀에 맞추려다 보니 보고서의 제목이나 행사 현수막만 바꿔 다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최근 교육과학기술부와 지식경제부 산하 출연연들은 회의와 보고서 작성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연구소마다 창조경제와 국민행복을 기치로 내건 내부 태스크포스(TF) 조직이 별도로 운영될 정도다. 대덕연구단지 A출연연 관계자는 “부처에 보고되는 모든 안건은 물론 조직의 운영 및 연구 방향조차 창조경제나 국민행복과 연결되지 않으면 우선순위에서 제외된다”고 말했다.

대다수 연구소들은 창조경제와 국민행복의 의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B출연연 관계자는 “창조적이지 않은 과학이 어디에 있고, 국민이 불행해지는 기술이 어디 있겠느냐”면서 “처음엔 브레인스토밍을 좀 하다가 최근에는 연구소마다 기존 보고서와 로드맵을 창조경제와 국민행복으로 포장하는 작업만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국책 연구기관들이 주최하는 학술대회나 토론회도 하나같이 창조경제와 국민행복만 부르짖고 있다. 국무총리실 산하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은 2월과 3월 잇따라 창조경제 관련 보고서를 내놨다. 지난 12일에는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과학기술 정책 방향’ 포럼을 개최했다. 14일에는 산업기술연구회가 ‘창조경제 견인을 위한 산업기술 추진전략 포럼’을 열었다. 고용노동부가 21일 창조경제론 강의를 여는 등 정부 부처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한 기관 관계자는 “개념이 명확하게 제시된 것도 아니라서 나오는 보고서마다 중구난방이고 포럼 내용도 원론적인 얘기만 늘어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런 식이라면 창조경제는 탁상공론으로 끝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2013-03-2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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