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사로 일하다 분신…한국 노동운동 전기 마련
1970년 11월 13일 오후 1시 40분 서울 평화시장 앞.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은 근로기준법 해설서를 쥐고 몸에 불을 붙인 채 시장거리를 달리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라고 외치다 쓰러졌다. 1948년 대구 봉제공의 아들로 태어난 전태일은 열두 살 때부터 날품팔이를 시작했다. 미싱사 보조로 일하다 1969년에는 재단사 모임 ‘바보회’를 만들었다. 당시 평화시장에서는 13~14세의 어린이들이 하루평균 14~15시간 동안 일하고도 하루 하숙비 120원의 절반도 안 되는 일당을 받는 등 살인적인 근로조건에 시달렸다. 전태일은 ‘삼동친목회’를 만들어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활동을 벌였지만 현실이 전혀 개선되지 않자 분신자살을 선택했다. 전태일 분신사건은 열악한 노동환경과 근로기준법에 대한 각성을 불러오는 등 한국 노동 운동에 새 전기를 마련했다. 최저임금법은 1986년에야 만들어졌다.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2012-08-29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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