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4차례 방중 가운데 3차례 겹쳐..”보안 유지 위한 中 포석일수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러시아 방문을 끝내고 귀국을 위해 러시아 접경인 중국 네이멍구(內蒙古) 만저우리((滿洲里)에 진입한 시각은 지난 25일 오후 6시께(이하 현지 시각).이때 조백상 총영사를 비롯한 주선양 한국총영사관 관계자 상당수는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에 머물고 있었다.
이튿날인 26일 창춘에서 선양총영사관 주최로 열리는 ‘제2회 중국 동북3성 한·중 기업인 교류회’ 준비를 위해 이날 오전 일찌감치 도착했던 것.
동북 3성 내 한인회와 조선족기업가협회 소속 기업인 100여 명도 이날 창춘에 집결했다.
중국 동북지역 한국과 조선족 기업인의 교류 강화와 상생의 길 모색을 위해 열린 이 행사는 김 위원장이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을 무정차 통과해 귀국을 서두르던 27일까지 계속됐다.
선양 총영사관 관계자들이 행사를 마무리짓고 창춘에서 선양으로 복귀한 시점은 28일 오후. 김 위원장이 지린(吉林)성 퉁화(通化)에서 지린성 간부들을 만난 뒤 지안(集安)을 통해 북한 만포로 넘어간 시각과 거의 비슷했다.
이 때문에 선양총영사관은 이번 김 위원장의 방중 경로 파악에 애를 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영사관의 상당수 인력이 행사에 매달린 데다 동북지역에 퍼져 있는 한국의 주요 기업인 대부분이 창춘에 머물면서 김 위원장의 행로를 파악하는 정보망도 상당부분 끊겼기 때문이다.
중국 동북지역 현지 정부의 관심과 촉각이 온통 김 위원장의 방중에 쏠리면서 오래전부터 준비했던 이번 행사도 빛이 바랬다.
김 위원장 방중과 한국측이 주관하는 중국 동북지역 행사 일정이 겹친 것은 이번뿐이 아니다. 지난해 5월부터 지금까지 4차례에 걸친 김 위원장의 방중 가운데 3차례가 그랬다.
지난해 8월 지안을 거쳐 중국을 전격 방문했을 때는 류우익 당시 주중대사와 신형근 당시 선양총영사가 연변(延邊)자치주를 방문하고 있었다. 그해 여름 수해를 본 연변지역에 한국 대기업이 지원한 성금을 전달하고 연변과의 교류 강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갑작스런 김 위원장의 방문 때문에 선양총영사관 관계자들은 그의 경로 파악 등을 위해 연변 방문 일정을 다 소화하지 못한채 서둘러 선양으로 복귀해야 했다. 지난해 5월 첫 방문 이후 3개월 만이 이뤄진 김 위원장의 방중에 시선이 쏠리면서 한국의 연변 수해 지원도 관심을 끌지 못한채 묻혀졌다.
김 위원장이 양저우(楊州)까지 가는 긴 여정을 소화했던 지난 5월 방문 때도 마찬가지였다. 부임한지 2개월된 조백상 신임 선양총영사가 부임 인사차 지린성 지린시에 머물던 날 새벽 김 위원장의 특별열차가 투먼(圖們)을 통해 중국으로 넘어왔다.
조 총영사를 비롯한 선양총영사관 관계자들은 김 위원장 동선을 파악하느라 지린시 일정을 소화하는 데 애를 먹었다.
물론 김 위원장의 방중과 한국 공관의 행사가 잇따라 겹친 것은 우연의 일치일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의 방중이 노출되는 것을 막으려는 중국 측의 의도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국 공관은 중국에서 주최하는 행사나 공관장의 지역 방문과 관련해, 적어도 한 달여 전부터 중국 현지 정부와 논의하고 있다.
따라서 김 위원장의 방중을 북한측과 사전 조율할 중국으로서는 마음만 먹는다면 한국 공관의 행사와 김 위원장의 방중 일정을 겹치지 않게 조정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 위원장의 방중이 전격적으로 이뤄지고, 이를 공개할 수 없는 처지라 해도 다른 이유를 들어 한국 측에 일정 조정을 사전에 요청할 수도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3차례나 연거푸 김 위원장의 방중과 한국 공관의 행사 일정이 겹친 것은 우연으로만 보아 넘기기에는 석연치 않다는 분석이다.
한국 공관으로서는 설령 김 위원장의 방중 사실이 알게되더라도 행사에 매달려야 하기때문에 정보 수집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김 위원장의 방중이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북한의 요청에 따라 중국이 보안 유지를 위해 의도적으로 그의 방중과 한국측 행사 시기를 맞물려 잡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없지 않다.
선양 외교가에서는 ‘혈맹 관계’인 북한 최고 수뇌부의 방중을 배려해야 하는 중국측의 입장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한국의 입장을 지나치게 고려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이 방중하는지를 알려면 중국 동북지역에서 한국 공관의 행사가 열리는지를 먼저 파악해야 할 것이라는 농담도 대북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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