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자 인정 김상덕 前제헌의원 아들 김정륙씨
“여든이 다 된 노인이 백주대낮에 부끄러운 것도 모르고 길거리에서 엉엉 울었어요. 제가 죽기 전에 조금이라도 아버지의 명예를 되찾아 다행이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멉니다.”●“5년전 평양 묘지에 안장 확인”
6·25 전쟁 중 납북자로 인정받은 김상덕(1891~?) 전 제헌국회의원의 아들 김정륙(76) 임시정부기념사업회 부회장은 2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납북 경위와 그간 납북자의 자식으로서 처절하게 살아야 했던 지난날을 털어놓았다. 세파의 고초를 겪은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지만, 아버지가 북으로 끌려가던 1950년 7월의 그날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전쟁이 터지자 이 박사(이승만 전 대통령)는 라디오를 통해 ‘우리가 곧 반격하니 도망가지 말라. 서울을 사수하고 나도 여기 있겠다.’고 말했어요. 이 박사의 안심하라는 말만 믿고 아버지와 저는 서울에 남아 있었죠. 반민특위 위원장을 지낸 아버지는 납북을 피해 돈화문 근처 친척집으로 피신했어요. 안심하라던 이 박사는 이미 남쪽으로 피한 뒤였죠.”
그렇게 집에서 숨어 지낸 지 20여일이 지난 7월 초순, 비극이 시작됐다. 아들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 김 전 의원이 필동 자택을 찾은 것.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이내 인민군이 집으로 쳐들어왔고 그렇게 아버지와 이별했다. 인민군은 “남쪽에서 훌륭한 사업(반민특위)을 하신 어른이시니 걱정말라. 조금 있다가 돌아오실거다.”고 했지만 김 전 의원은 돌아오지 않았다. 2006년 남북교류를 통해 평양을 방문한 아들은 아버지가 평양 외곽의 한 묘지에 묻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영전에 무궁화훈장 바쳤으면…”
“아버지는 분명히 북한에 강제로 잡혀갔음에도 과거 정부로부터 이적행위자 취급을 받았어요.” 김 전 의원은 1990년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았다.
김 부회장의 소원은 두 가지다. 다른 제헌의원들처럼 무궁화 훈장을 받아 아버지 영전에 바치고, 아버지가 못다 이룬 친일을 청산하는 것. 그는 “납북자의 명예회복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면서 “정확한 사인을 밝히고 추가 납북자 규명을 위해 남북관계부터 정상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2011-08-03 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