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남산을 침략의 성전으로 만들려 했다”

“일제, 남산을 침략의 성전으로 만들려 했다”

입력 2011-07-13 00:00
수정 2011-07-13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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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흥 국민대 교수, 서울문화연구원 문화포럼 강연

“일제는 서울의 상징 남산을 일제 침략을 기념하는 성전으로 만들려 했습니다.”

장석흥 국민대 국사학과 교수는 서울문화연구원이 13일 오후 종로구 동숭동 예술가의 집 다목적 홀에서 ‘남산, 근대 백년의 이야기’를 주제로 개최한 첫 월례 문화포럼에서 이같이 말하면서 남산의 수난사와 앞으로 남산을 어떻게 가꿔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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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교수는 미리 공개된 발표문에서 목밀산(木密山) 또는 목멱산(木覓山)에서 남산이라는 이름으로 일반화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 식민지 때로, 일제는 울창하던 소나무들을 베어내고 그 자리에 벚나무들을 심었고 일본공사관, 조선통감부와 주차군사령부, 헌병사령부 등 식민통치의 핵심 기구들을 남산 언덕에 설치했다고 지적했다.

남산에 거주하는 일본인들도 급격히 증가해 1906년 당시 1만여 명이었으나 1910년에는 4만 명, 1920년에는 6만 5천여 명, 1930년대 중반에는 10만 명을 넘어 당시 서울 인구의 3분의 1에 이르렀다.

일제는 또 남산을 일본 정신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바꾸고자 서울의 수호 신사였던 국사당을 몰아내고 ‘천황’을 숭배하는 조선신궁을 비롯해 각종 일본 불교 사찰 등을 곳곳에 세웠다고 장 교수는 전했다.

이와 함께 한국 침략의 원흉으로 꼽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초대 조선통감을 추모한다며 1932년 장충단 근처에 박문사(博文祠)를 건립하는가 하면 청일전쟁 승리를 자축하는 기념비와 러일전쟁 영웅 노기(乃木)를 기념하는 신사를 세우는 등 일제가 남산을 침략을 기념하기 위한 성전(聖殿)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어 장 교수는 “해방 후 일본 신사와 사찰 등은 철거됐지만 노기 신사의 석재들이 휴식 공간의 도구로 나뒹굴고 조선 신궁의 돌계단이 여전히 남산 중심부를 지키고 있다”며 “황국신민서사지주의 기단이 남산의 흙속에 파묻힌 채 우리 민족의 정기를 작란스럽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남산은 “세계의 중심을 지향하는 서울의 더없이 소중한 자연문화공간”이라며 남산을 세계적 문화공간으로 가꾸려면 “자연과 인간이 공감하고 소통하던 전통의 복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포럼은 지난 5월 개원한 서울문화연구원(대표 함영준)이 남산의 지난 100년간 수난사를 짚어보고 앞으로 남산을 어떻게 가꿔야 할지 고민해보기 위해 마련한 첫 월례 문화포럼으로, 이희진 IB스포츠 대표이사, 기타리스트 함춘호 등 각계 인사 100여 명이 참석하며 포럼이 끝나면 가든파티도 열린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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