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61주년] “난리통에 여자가 무슨 군입대냐며 가족들 반대도 많았죠”

[6·25 전쟁 61주년] “난리통에 여자가 무슨 군입대냐며 가족들 반대도 많았죠”

입력 2011-06-25 00:00
수정 2011-06-25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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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열여섯 살 때였지요. 전쟁 중이었지만 여자도 뭔가 해야 한다는 결의가 아주 높았습니다.” 원로 성우 고은정(75)씨는 해마다 이맘때면 6·25전쟁 당시를 잠시 추억한다. 지난 20일 서울 서초동 자택 인근에서 고씨를 만났다. 1950년 11월 서울 수도여중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고씨는 학생들 사이에 ‘국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고, 금방 통일된다.’는 소문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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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성우 고은정씨
원로 성우 고은정씨
고씨는 “서울고와 용산고 학생들도 학도의용군에 뽑혀 북진 대열에 합류한다.”고 말하면서 여학생이라고 가만히 있으면 되겠느냐고 했더니 동의하는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결국 며칠 뒤 고씨는 단짝 친구 3명과 함께 여자의용군에 자원입대했다. 서울 충무로의 일신초등학교에 훈련막사가 설치됐다. 한성여고 밴드부와 동덕여고 무용반 학생들도 와 있었다. 여기에서 ‘여자의용군 예술대’가 결성된 것. 고씨의 군번은 0995862. 훈련은 주로 아침 일찍 남산을 한 바퀴 돌아오는 것이었다.

20일쯤 지나자 잠시 외출을 나가게 됐다. 집에 갔더니 가족들이 “난리 통에 여자가 무슨 군입대냐.”며 귀대하지 말라고 붙잡았다. 고씨는 “어떻게 외출 나왔다가 안 들어가느냐.”며 부대로 돌아갔다. 그런데 동료 3분의1이 귀대하지 않았다. 남은 예술대원은 20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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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참전용사가 본 1953년의 한국 6·25전쟁 당시 제78 야전정비 중대로 참전해 1953년 3월부터 54년 4월까지 한국에서 근무한 미국 펜실베이니아 출신 참전용사 로버트 T 호이트가 촬영한 사진들. ① 시가전으로 처참히 파괴된 수원 화성의 53년 당시 모습. ② 휴전협정 이후인 53년 8월에 판문점 인근에서 이뤄진 남북 전쟁포로 교환 장면. ③ 53년 서울 인근에서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 모여 있는 어린이들. 호이트는 6·25전쟁 61주년 유엔 참전용사 방한 행사를 맞아 한국을 재방문했다.  연합뉴스
美 참전용사가 본 1953년의 한국
6·25전쟁 당시 제78 야전정비 중대로 참전해 1953년 3월부터 54년 4월까지 한국에서 근무한 미국 펜실베이니아 출신 참전용사 로버트 T 호이트가 촬영한 사진들. ① 시가전으로 처참히 파괴된 수원 화성의 53년 당시 모습. ② 휴전협정 이후인 53년 8월에 판문점 인근에서 이뤄진 남북 전쟁포로 교환 장면. ③ 53년 서울 인근에서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 모여 있는 어린이들. 호이트는 6·25전쟁 61주년 유엔 참전용사 방한 행사를 맞아 한국을 재방문했다.
연합뉴스
이튿날 예술대원들은 부산으로 떠나기 위해 겨울용 잠바와 담요 한 장씩을 들고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수백 명의 남자군인 틈에 끼여 무개화차에 막 오르려는 순간 신성모 국방장관이 나타나 “왜 여자들을 지붕 없는 차에 태우느냐.”고 호통을 쳤다. 할 수 없이 다음 날 트럭을 이용해 인천항을 거쳐 상륙함정(LST)을 타고 3일 만에 부산항에 도착했다.

이후 예술대원들은 영도초등학교의 임시막사에서 지냈다.

그러던 중 고씨는 발을 다쳐 의무실 신세를 지게 됐다. 이때 한 목사의 도움으로 책 몇 권을 얻었다. 예술단원으로 병원 위문을 가기 위해서는 책이 필요했다. 1951년 2월 전쟁이 소강상태에 이르면서 휴가를 떠나게 됐다. 하지만 딱히 갈 곳이 없어 도움을 받았던 목사와 함께 제주도에 있는 피란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제주도로 향했다. 고씨가 제주 오현중학교에 설치된 피란민 학교에서 중학교 졸업장을 받게 된 것도 이런 까닭이다. 여기에서 그는 육군 제대자로 처리됐다.

고씨는 “당시 동료들과 가끔 만나 추억담을 나누기도 했지만 지금은 세월이 지나서인지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선엽 장군 등 6·25 참전 군인들에 따르면 여자의용군은 당시 김현숙 소령이 최초 여군단장을 맡아 500여명으로 조직됐다. 처음 여자의용군을 모집할 때 3000명 이상 몰렸을 정도로 지원율이 높았다. 지원 자격은 18~25세의 미혼 여성으로 중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으로 엄격한 필기시험과 신체검사를 거쳤다.

여군은 후방지역에서 주로 행정·경리·통신 분야에서 복무했지만 일부는 전방 전투사단에 배치돼 정보수집, 수색활동, 선무활동에 참가했다. 특수교육을 받은 일부 여군들은 적진에 투입돼 첩보수집 임무를 수행했다. 특히 인천상륙작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암호명 ‘래빗’(토끼)으로 미군 첩보부대의 훈련을 받은 미모의 첩보요원들도 비밀리에 임무를 펼쳤다. 간호장교들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사방이 포위됐을 때에도 끝까지 부상병을 돌보다가 많은 희생을 당했다. 제주에서는 최초의 여자 해병대 126명이 모집돼 40여일 동안 훈련을 받고 일선에 배치됐다. 여기에는 미혼인 학교 선생도 여럿 참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전선이 교착되는 상황과 함께 전투가 소강상태에 이르면서 여군은 새로운 체제로 재정비된다. 1951년 11월 여군의 인사관리 등을 담당할 지휘기관으로 여군과가 육군본부 고급 부관실 내에 설치돼 각 군 감실 및 부대에 배속된 여군의 인사 행정 업무를 담당했다.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2011-06-25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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