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파주 용미리 석불입상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파주 용미리 석불입상

서동철 기자
서동철 기자
입력 2016-01-22 17:12
수정 2016-01-22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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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도둑으로부터 백성 지킨 설화 품은 ‘의주대로 수호신’

혜음령은 경기 고양시 고양동과 파주시 광탄면을 잇는 고개다. 지금은 자유로와 통일로가 서울과 개성을 잇는 간선도로 역할을 하고 있지만, 고려 말과 조선 시대에는 혜음령을 지나는 의주대로가 한양에서 황해도, 평안도 지역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혜음령은 고양향교가 있는 고양동에서 흔히 용미리공동묘지로 불리는 서울시립용미리공원묘지로 넘어가는 고개라고 설명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옛 의주대로는 정비가 이루어져 서울과 경기가 경계를 이루는 삼송동에서 임진강과 만나는 임진나루까지 걸어서 탐방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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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의주대로’의 일부분인 혜음령길 쪽을 바라보고 있는 용미리 석불입상.
옛 ‘의주대로’의 일부분인 혜음령길 쪽을 바라보고 있는 용미리 석불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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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미리 석불입상.
용미리 석불입상.
●혜음원 국립 숙박시설… 석불입상 높이 17.4m

혜음령과 광탄면 사무소 사이에는 혜음원 터와 용미리 석불입상이 있다. 혜음원은 고려시대 개경과 남경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자 예종 17년(1122) 세운 국립 숙박 시설이다. 왕의 행차를 위한 별원(別院)과 사찰도 있었다. 발굴 조사에서는 혜음원(惠陰院)이라고 새겨진 암막새 기와가 나왔고, 동서 104m, 남북 106m의 절터에서 9개 석단에 27개 건물터가 확인됐다.

혜음원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잡아 조금만 더 올라가면 나타나는 장지산 기슭에 용미리 석불입상이 세워진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높이가 17.4m에 이르는 한 쌍의 석불입상은 일반적으로 고려시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불상에 새겨진 글을 토대로 조선 성종 2년에 해당하는 성화(成化) 7년(1471) 조성한 것이라는 연구도 있다. 성화는 명나라 헌종의 연호다. 명문에는 시주한 사람들의 이름도 줄줄이 적혀 있으니 석불입상의 조성과 연관 짓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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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음령길에서 바라본 장지산 기슭의 용미리 석불입상.
혜음령길에서 바라본 장지산 기슭의 용미리 석불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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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음원터 발굴조사 현장.
혜음원터 발굴조사 현장.
●석불입상·혜음사 사회안전망 필요성 인식 담겨

하지만 석불입상에 얽힌 구전설화와 혜음사 창건 배경을 담은 고려시대 문신 김부식의 글을 찬찬히 읽다 보면 고려시대 조성설(說)에 다시 마음이 기울게 된다. 설화에 따르면 고려 선종이 자식이 없어 원신 궁주를 맞이했지만 여전히 태기가 없었다. 궁주가 어느날 꿈을 꾸었는데, 두 도승(道僧)이 나타나 “매우 시장하니 먹을 것을 달라”고 하고는 사라졌다. 궁주의 이야기를 들은 왕이 그들이 있다는 곳을 찾아가게 했더니 과연 큰 바위 둘이 나란히 서 있었다. 왕이 바위에 두 도승을 새기게 하고 불공을 드렸더니 왕자인 한산후(漢山候)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삼국사기’의 편찬자이기도 한 김부식은 ‘혜음사 신창기’(惠陰寺 新創記)에서 혜음령 길을 두고 ‘산이 깊고 초목이 우거져 범과 이리가 떼 지어 모이고, 도둑의 무리도 숨기 쉬워 통행하는 사람들이 무리를 모으고 병기를 휴대해 지나가는데도 죽음을 면치 못하는 자가 한 해 수백 명’이라고 탄식했다. 이런 실상을 파악한 신하가 “허물어진 절을 새로 지어 중을 모으고, 그 옆에 집을 지어 노는 백성들을 정착시킨다면 짐승과 도둑의 해는 절로 멀어져 통행하는 데 어려움이 없어질 것”이라고 진언하자 왕이 그대로 따랐고 결국 ‘무서운 길이 평탄한 길이 되었다’는 것이다.

●빈민구제 정신 함축하고 있는 석불입상

용미리 석불입상 창건 설화와 혜음사 신창기는 의주대로 주변에 살고 있는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구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단순히 도적을 토벌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빈민의 배고픔을 막아 도둑의 길에 빠져들지 않게 한다는 적극적 사고는 오늘날에도 배울 만하다. 고려시대에 오늘날의 표현으로 사회 안전망의 필요성을 인식한 것이다.

석불입상 창건 설화는 상징성이 강한 설화의 특성상 구구절절한 내용이 담겨 있지는 않지만 ‘신창기’와 다르지 않은 빈민구제 정신을 함축하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석불입상은 혜음원과 비슷한 시기 일종의 세트로 조성한 것은 아닐까 상상도 해 본다. 반면 ‘세조와 정희왕후가 일시에 깨달을 것을 미륵에 기원했다’는 명문에서 비롯된 조선시대 창건설은 감동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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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2016-01-23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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