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는 ‘처세권’… 육아천국 뒤에 왕복 3시간 출퇴근 지옥이 열렸다

맞벌이는 ‘처세권’… 육아천국 뒤에 왕복 3시간 출퇴근 지옥이 열렸다

송수연 기자
송수연 기자
입력 2021-06-09 22:00
수정 2021-06-10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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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이 된 통근-집과 바꾼 삶] 가족이 대신 메꾸는 사회복지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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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인근 보험회사에 다니는 이명진(39·가명)씨는 서울 서대문구에서 김포로 이사했다. 20분도 걸리지 않던 출근 시간은 1시간 30분으로 4배 이상 늘었다. 그가 장거리 통근 부담에도 처가가 있는 김포로 간 이유는 육아 때문이다.

이씨는 여섯 살 쌍둥이를 키운다. 항공사 승무원인 부인이 육아휴직을 하고 두 아이를 돌봤지만 복직 이후 어려움이 컸다. 출장으로 집을 며칠씩 비우는 일이 잦아지다 보니 쌍둥이를 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이씨는 “아이돌보미를 구하려고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쌍둥이라 더 쉽지 않았다”며 “정작 내 아이들을 믿고 맡길 육아시스템은 장모님뿐이었다”고 말했다.

맞벌이 가정의 금언은 ‘역세권보다 처세권이 낫다’는 말이다. 직주근접을 고려할 겨를이 없다. 맞벌이 미취학 아동 가정의 주거 선택지는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지역이 우선된다. 국가가 출산 후 여성의 재취업이나 사회 활동을 장려해도 맞벌이 가정을 지원할 보육 환경과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공염불이다.

서울신문이 데이터분석업체 케이스탯리서치와 공동으로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서울시 도시정책지표조사 응답자인 서울 아파트 거주 통근자 11만 4918명의 데이터를 추출·분석한 결과 ‘미취학 아동이 있는 가구’와 ‘미취학 아동이 없는 가구’ 간 경계선이 분명하다. 지난해 기준 미취학 아동이 있는 가구의 평균 출근시간은 42.6분. 미취학 아동이 없는 가구(37.2분)와 비교해 5.4분 더 길다.

최근 4년간 이 같은 시간 격차가 벌어지는 추세다. 2010년 미취학 아동 가구(39.1분)와 아닌 가구(34.9)의 통근 시간 차는 4.2분에 그쳤다. 2015년 1.1분 차까지 줄었다가 2016년 1.8분, 2018년 4.4분, 2020년 5.4분으로 점차 벌어지는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정림 육아정책연구소 영유아가족연구실장은 “30~40대 부부 맞벌이 가구의 비율이 계속 증가해 2019년 기준 50%를 넘었다”면서 “육아를 위해 장거리 통근을 감수하는 가정도 미취학 아동가구의 평균 통근 시간을 늘리는 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봤다.

육아정책연구소가 2017년 영유아 맞벌이가정 부모 1000명을 조사한 결과, 평상시 어린이집을 이용하다 긴급할 때 자녀를 맡길 데를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는 응답이 78.9%였다. 자녀가 아플 때 돌봐준 대상으로 조부모 등 혈연이 42.7%로 꼽혔다. 지난해 5월 친정과 같은 아파트에 살고자 이사를 한 워킹맘 박지은(37·가명)씨도 “어린이집 하원 후 아이들을 돌봐주는 아이돌보미가 갑자기 못 오거나, 아플 때 연차도 쉽지 않아 친정 근처로 이사를 결심했다”고 했다. 이와 관련,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여전히 사회복지 시스템의 결핍을 가족이 대신 수행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유연근무제와 남성 육아휴직은 일부 대기업 등만 시행된다. 채용사이트 사람인이 지난해 8월 기업 342개사를 대상으로 한 ‘유연근무제 실시 현황’ 조사에 따르면 시행 기업은 전체의 36%에 그쳤다. 이정림 실장은 “아이를 키우는 맞벌이 부부들은 비용 지원보다는 시간 지원을 더 원하지만 저출산 대책이 눈에 보이는 지원금에만 맞춰져 있고 보육 제도와 기업의 양육 지원은 소홀하다”고 지적했다.

남성 육아휴직도 통계를 보면 갈 길이 멀다. 통계청의 2019년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은 1.8%다. 4세 아이를 둔 대기업 직장인 김준수(38·가명)씨는 “육아휴직을 하면 승진을 포기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력하다”며 “아빠의 육아휴직이 당연시되는 직장 분위기는 한참 멀었다”고 말했다. 남재욱 한국직업능력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맞벌이 부모는 보육 서비스가 아무리 잘돼 있다고 해도 야근하면서 아이를 보육 기관에 밤 9시까지 맡기고 싶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장시간 근로문화를 더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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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2021-06-1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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