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연천으로 떠나는 지질여행
경기 연천 등 전방 지역은 겨울에 찾아야 제맛입니다. 삭아 내린 가지 너머로 평소 볼 수 없었던 풍경들이 드러나지요. 압권은 용암이 만든 검은 현무암의 세계입니다. 시간의 지층을 뒤덮은 흰 눈 덕에 그 어느 때보다 극적으로 자태를 드러냅니다. 연천 등 경기 북부지역에는 이처럼 용암이 흐르며 만든 풍경들이 많습니다. 덜 알려졌을 뿐 지질학적으로 중요성을 인정받은 곳들입니다. 그러니 겨울방학 맞은 자녀들과 연천으로 지질여행을 떠난다면, 당신은 세계 지질학계가 주목하는 곳에 발을 딛는 셈이지요.
재인폭포
용암이 만든 풍경은 대부분 한탄·임진강 지질공원에 포함돼 있다. 우리나라에서 7번째로 지정된 국가지질공원이다. 이름에서 보듯, 한탄강과 임진강, 그리고 연천을 관통하는 차탄천 주변에 지질명소들이 흩어져 있다.
동이리 주상절리부터 찾아간다.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합수머리에 서 있는 현무암 절벽이다. 높이 40~50m의 주상절리 절벽이 1.5㎞ 정도 뻗어 있다. 27만년 전쯤 북한 평강군 오리산에서 분출된 용암이 한탄강~임진강 110㎞ 구간을 흐르며 만든 화산지형 가운데 하나다. 이처럼 직선으로 뻗은 주상절리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장관이라고 한다.
왕림교 아래 은대리 협곡 일대는 ‘야외 암석박물관’으로 꼽히는 곳이다. 19억년 전 선바위와 비교적 ‘젊은’ 신생대 제 4기(약 55만년 전~12만년 전)의 현무암 주상절리까지, 다양한 암석과 지질을 만날 수 있다. 왕림교를 중심으로 수직의 주상절리와 수평의 판상절리 지대가 나뉜 것도 이채롭다. ‘차탄천 에움길’을 따라 차탄천 일대 지질 명소들을 둘러볼 수 있다. 에움길 전체길이는 약 9.9㎞다. 차탄천이라는 이름은 수레여울에서 유래했다. 조선시대 태종 이방원이 조선 건국을 반대하고 연천으로 낙향한 친구 이양소를 만나기 위해 연천으로 오던 도중 이 여울에서 수레가 빠졌다. 수레여울을 한자로 옮기면서 차탄천으로 불리게 됐다.
좌상바위
좌상바위에서 재인폭포 방향으로 가다 보면 ‘아우라지 베개용암’과 만난다. 포천시에서 흘러온 영평천이 한탄강과 만나는 합수머리 일대에 형성된 지질명소다. 베개용암은 용암이 차가운 물과 만나 빠르게 식을 때 표면이 둥근 베개모양으로 굳으며 생긴다. 대부분 깊은 바다에서나 볼 수 있는데, 아우라지 베개용암은 내륙의 강가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매우 희귀한 자료로 꼽힌다.
고문리 협곡
마지막은 ‘비주얼 담당’ 재인폭포다. 18m 높이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맑은 물줄기와 주상절리 협곡, 그리고 흰 눈이 어우러져 다른 계절에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자태를 선보이고 있다. 재인폭포 위엔 스카이 워크가 조성돼 있다. 투명한 유리바닥 위에 서면 발아래로 짜릿한 풍경이 펼쳐진다.
연천의 겨울 풍경 가운데 빼놓지 말아야 할 것 몇 가지 덧붙이자. 연천 주민들은 임진강을 연강이라 부른다. 이 연강을 따라 걷는 길이 조성돼 있다. ‘연강나룻길’이다. 누가 이 길을 찾을까 싶은데, 주말이면 북녘의 산하를 굽어보며 걷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코스는 세 개로 나뉘지만, 대개는 군남홍수조절지(군남댐) 아래 두루미테마파크에서 중면사무소까지 가거나, 혹은 원점회귀하는 7.7㎞ 코스를 선호한다. 옥녀봉까지 4㎞ 정도 완만한 경사가 이어질 뿐 크게 힘든 구간은 없다.
두루미테마파크에 3.1㎞ 떨어진 개안마루는 예부터 많은 이들이 절경으로 꼽았던 곳이다. 조선시대 겸재 정선도 그랬다. 임진강을 배로 돌아본 뒤 ‘연강임술첩’(1742)을 그려 아름다움을 칭송했는데, 전문가들은 특히 개안마루 일대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을 것이라 보고 있다. 개안마루에 서면 말 그대로 눈(眼)이 열리는(開)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발밑으로 강줄기가 푸른 용처럼 휘돌아 가는 듯하다. 얼어붙은 강변 위엔 30여 마리의 두루미(천연기념물 202호)가 한쪽 다리를 접고 서 있다. 인간의 배려가 없다면 머지않아 종 자체가 소멸할 위기에 처한 녀석들이다. 개안마루 주변에 율무밭이 많은데, 두루미들이 율무 낙곡을 특히 즐겨 먹는다고 한다.
그리팅맨(인사하는 사람)
빙애여울
‘연천 구석기 겨울여행 축제’가 7일~2월 5일 전곡리 유적지 일대에서 열린다. 빙하시대 구석기인들의 생활상을 보고 체험할 수 있는 축제다. 다양한 겨울놀이와 선사시대를 체험할 수 있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야외 화덕에 생고기를 구워먹는 구석기 바비큐 체험이다. 실내에서는 의복 입기, 주먹도끼 목걸이 만들기 등 체험행사가 열린다. 초대형 눈 조각과 눈썰매장, 얼음마을, 얼음놀이터 등 즐길거리도 풍성하게 마련됐다. 주말마다 7080공연 등 문화공연도 펼쳐진다.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31)
→가는 길:경기 북부에서는 자유로를 타고 문산에서 빠져 전곡 방향으로 가면 된다. 서울 동부권에서는 의정부를 거쳐 연천 방향으로 간다. 서울외곽순환도로 송추 나들목에서 빠져도 된다. 의정부를 지나 3번 국도를 타면 된다. 재인폭포로 내려가는 철제 계단은 겨울철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잠겨 있는 경우가 많다. 스카이워크는 눈 오는 날 출입이 통제된다. 한탄·임진강지질공원 방문객센터는 전곡리선사유적지(832-2570) 안에 있다. 다만 구석기 겨울축제가 열리는 동안은 일시적으로 폐쇄된다. 지질해설사는 재인폭포에 상주하고 있다. 태풍전망대는 주민증만 있으면 출입할 수 있다. 단 화요일은 출입 통제다.
→맛집:한탄강 오두막골(832-4177)은 가물치구이로 이름난 집이다. 얼큰한 민물 새우탕을 곁들여 낸다. 불탄소가든(834-2770)의 잡고기 매운탕도 맛있다. 다소 심심하게 끓여낸다. 재인폭포 아래 있다.
2017-01-05 18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