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34> 양재천
서울 강남구 양재천 전경.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생태하천 양재천은 독립적인 한강의 지류였다가 강남 개발 이후 탄천의 지류가 됐다. 양재천과 탄천이 품은 ‘대한민국 사교육의 메카’ 대치동은 교육과 부동산 수요가 결합한 강남의 민낯이기도 하다.
서울미래유산 투어 참가자들이 양재천 손바닥습지와 발바닥습지 앞에서 생태계 복원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탄천은 또 강남구와 송파구를 나눈다. 손정목의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에 따르면 강남 개발이 시작되기 전인 1970년 1월 “강남지역(한강 이남)에서 가장 장래성이 있고 투자 가치가 있는 곳이 어딘가?”라는 당시 박정희 정권의 실세 박종규 경호실장의 질문에 윤진우 서울시 도시계획과장이 “탄천을 경계로 그 서부지역 일대(현재의 강남구)입니다”라고 답했던 바로 그곳이다. 양재천과 탄천의 만남이 강남 부동산 불패 신화의 출발 지점인 셈이다.
매입 자금 중 2억 5000만원은 당시 공화당 재정위원장인 김성곤 쌍용그룹 창업주가 정치헌금으로 냈는데 그 보상으로 대치동과 삼성동의 땅 6만 2000여평이 주어졌다. 이 중 2000평 정도는 오늘의 테헤란로 일대의 일급지였고, 나머지는 탄천과 양재천이 만나는 지점의 높이 50m가량의 돌산 등 버려진 땅이었다. 1974~1978년 사이 탄천과 양재천에 제방이 쌓이기 전까지 비만 오면 잠기던 상습 침수지였다. 1970년대 후반 골재난 때 돌산을 폭파해 골재로 팔았고, 1981년 그 자리에 지은 아파트가 학여울역 앞 대치동 쌍용1차·2차 아파트다. 한보주택 정태수의 은마아파트와 함께 대치동 시대의 서막이었다.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과 그 너머로 보이는 양재천변의 초고층 아파트숲.구룡마을에서는 개발을 둘러싸고 주민 간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대동여지도를 보면 한강 이남에는 지명이 몇 개 나오지 않는다. 강북 쪽에 더 가깝게 붙어 있던 옛 잠실섬 아래로 송파, 삼전도라는 나루의 이름이 나오고, 탄천과 학탄이 등장한다. 양재역 좌우로 우면산과 대모산이 뚜렷하다. 현재의 강남에 해당하는 지명은 탄천, 학탄, 양재에 불과하다. 구룡산은 지도에 없는 무명의 산이었다. 1871년에 편찬된 ‘광주부읍지’에는 1970년대 강남 개발 이전의 지세가 비교적 잘 나타나 있다. 봉은사와 양재역 그리고 선정릉을 중심으로 경기 광주군 언주면이, 대모산과 헌인릉을 중심으로 광주군 대왕면이 묘사돼 있다. 현재의 서초구인 시흥군 신동면과 함께 18세기 후반 이후 한양도성민이 먹을 채소 재배지로의 역할을 맡았다.
대치란 우뚝 솟은 큰 고개를 뜻한다. 서울은 200여개의 고개와 30여개의 하천으로 이뤄진 산수의 도시다. 고개(峴)보다 더 높은 고개가 치(峙)다. 대치2동은 강남 개발 이후의 신생도시가 아니라 구릉지에 형성된 자연부락이다. 대치의 순우리말인 한티라고도 불렸다. 탄천과 양재천의 합류 지점에 위치한 대치동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침수지였다. 한티나 학여울은 다행히 지하철 역명으로 남았다. 한티마을은 한터마을이라고도 하는데 530살이 넘은 은행나무가 있어서 은행나무제사가 열렸고 지금은 ‘한티골 은행나무 문화축제’로 전승됐다.
대치동은 강남의 주변부였다. 1976년 12월 28일자 ‘동아일보’에는 “무교동은 평당 39만~90만원, 고속버스터미널이 건설될 예정인 반포동은 평당 60만~70만원인 반면 대치동과 도곡동은 4만~5만원으로 서울에서 땅값이 가장 싼 곳”이라는 기사가 실렸을 정도다. 탄천과 양재천 제방건설은 대치동의 지형을 순식간에 바꿨다. 10년 만에 강남의 대표적 아파트 단지가 됐고, 또 10년이 지난 뒤에는 양재천과 탄천변까지 최고급 아파트 단지가 빽빽하게 들어섰다. 한티라는 옛 고을 이름처럼 솟았다. 강남 개발을 담당한 서울시 관계자의 예언대로 탄천 서쪽, 양재천 주변은 강남 최고의 아파트 거주단지가 됐다.
‘대한민국 사교육의 메카’ 대치동의 군림은 강북 명문고교의 강남 이전과 강남 8학군 형성 이후 필연의 수순이었다. 2017년 현재 대치동 일대의 입시학원 수는 1200여개로 목동의 960여개, 상계동과 중계동을 합친 720여개를 압도한다. 지하철 3호선 도곡역과 대치역, 분당선 한티역이 사각형으로 둘러싼 지역이다. 은마아파트 사거리를 가로지르는 도곡로와 삼성로에 면한 상업건물, 아파트 단지의 상가, 대치4동의 다가구 밀집 블록 내의 근린상가 또는 주거용 건축물 곳곳에 학원이 깃들여 있다. 대치동은 명문 중고교와 학원, 그리고 고급 아파트 단지를 품은 강남의 민낯이다. 양재천은 그 사이를 말없이 흐른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제35회 서울의 문학5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집결 장소: 12월 21일(토) 오전 10시, 독립문역 4번 출구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2019-12-19 18면